박상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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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간도 용정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박상세(朴商世)
인물/근현대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3년 8월 10일
사망 연도
1919년 3월 13일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내용 요약

박상진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3일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3 · 1운동 축하식 행사에 참가하여 수천 명의 군중을 선도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던 중 일제의 사주에 의한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간도 용정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1873년 8월 10일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출신지는 알 수 없다. 1919년 3월 13일 사망하였다. 박상세(朴商世)라고도 한다.

주요 활동

1919년 3월, 주1 일대의 독립운동가들이 중심이 된 조선독립기성총회(朝鮮獨立期成總會)에서는 국내에서의 3 · 1운동에 호응해 독립선언을 경축하는 한편, 이를 기해 만세시위를 펼칠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3월 13일, 축하식장인 용정 서전평야(瑞甸平野)에는 명동학교(明東學校) · 정동학교(正東學校) 등 인근 지역 12개의 한국인 학교 학생, 직원을 비롯하여 수천여 명의 교민들이 모였다.

축하식은 대회장 김영학(金永學)의 독립선언포고문 낭독으로 시작하였고, 유예균(劉禮均) · 배형식(裵亨湜) · 황지영(黃志英) 등이 연설을 하였으며, 식이 끝나자 군중들은 명동학교 · 정동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320여 명의 충렬대원(忠烈隊員)을 선두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고 쓴 주2 · 정의인도기(正義人道旗)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였다. 박상진(朴尙進)도 이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무차별 발포로 인해 순국하였다.

3월 13일 연변 용정 서전평야에는 3만여 명 군중들이 모여 전대미문의 반일 대집회와 시위를 벌였고, 일본 경찰들과 장쭤린[張作霖][^3] 군벌들의 탄압으로 19명이 희생되고 1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 사건이 바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용정 3 · 13반일운동이다.

이처럼 3월 13일에 일어난 간도 지역의 만세운동으로 공덕흡(孔德洽), 박상진 등 수많은 동포가 희생을 당하자, 3월 17일 용정의 각계 인사들은 의사회를 조직하였고 3,000여 명의 애국 청년들과 동포들은 용정에 집결하여 희생된 열사들의 시체를 메고 가두행진을 하면서 희생된 열사들을 추모하고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였다.

용정의 만세시위는 이후 동삼성(東三省) 지역에서 시위운동이 확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20년 7월 14일 대한국민회장(大韓國民會長) 구춘선(具春先)을 통해 유족에게 포충장(褒忠狀)을 전달하였으며,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인터넷 자료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대한민국 독립운동가(http://w3devlabs.net/korea)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index.aks)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http://www.grandculture.net)
주석
주1

중국 만주 지방에 있는 성. 성도(省都)는 장춘(長春)    우리말샘

주2

약 15m 정도의 높은 깃대

주3

군벌이 되어 1913~28년에 만주 지방과 중국 북부 지방의 일부 지역을 지배하였던 인물이다. 라오솨이[老帥]라고도 한다. 장쭤린[張作霖]은 일본에게 만주 지방에서의 여러 가지 이권을 얻게 해준 대가로 일본의 암묵적인 지지를 받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였다.

집필자
김성혜(가톨릭관동대학교 교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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