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하나님의)

개신교
단체
기독교 내에 있는 오순절 계통의 한 교파.
이칭
이칭
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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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는 기독교 내에 있는 오순절 계통의 한 교파이다. 순복음교회라고도 한다. 1928년 미국의 선교사 럼시가 내한하면서 한국의 오순절 운동은 시작되었다. 1933년 조선오순절교회를 창립했으나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다. 1953년 체스넛이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을 창립하였다. 1959년 순복음부흥회관이 세워져서, 선교사를 이어 조용기 목사가 책임자가 되었다. 순복음부흥회관은 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이름을 바꿨다. 1981년 오순절교회에서 탈퇴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예수교대한하나님의 성회를 만들었다. 1991년 양측은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로 통합하였다.

정의
기독교 내에 있는 오순절 계통의 한 교파.
개설

1928년 미국의 오순절 계통의 여자 선교사 럼시(Mary C. Rumsey)가 내한하여 선교하면서 시작된 한국의 오순절 운동은 해방 후 미국의 최대 오순절 교단인 하나님의 성회와 관계를 맺고, 1953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라는 교단을 창립하였다. 이 교파는 미국의 하나님의 성회의 선교와 조용기 목사를 비롯한 한국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한국의 주요 교단으로 성장하였으며, 특히 조용기 목사가 세운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계 최대의 교회로서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설립목적

하나님의 성회는 중생, 성령세례, 신유, 재림을 강조하고 있으며, 특히 성령세례의 일차적인 증거는 방언이라고 주장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이상의 강조점에 축복을 덧 붙여서 오중복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성회는 중생에 이어 방언으로 나타나는 2차적인 은혜인 성령세례를 받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교리로 생각하며, 이러한 성령의 능력은 질병과 가난을 극복하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만든다고 믿는다.

연원 및 변천

한국 교회는 처음부터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는 체험적인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방언으로 나타나는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오순절 신앙이 한국에 등장한 것은 오순절 계통의 선교사 럼시가 1928년 내한하면서부터였다. 럼시는 구세군 신자였던 허홍과 함께 한국의 오순절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뒤 미국과 영국의 선교사들이 함께 사역하였고, 일본에서 오순절 신학을 공부한 박성산 등이 귀국하여 합류하였다. 그리하여 1933년 조선오순절교회를 창립하였다. 하지만 1939년 일제에 의해서 선교사들이 추방되었고, 1942년 교단 역시 폐쇄되었다.

해방 후 오순절운동의 자도자들은 다시 오순절교회를 재건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여기에 일본에서 오순절교회를 목회하고 있던 윤상덕 목사가 해방 후 귀국하면서 일본에서 귀국한 다른 오순절 신자들과 함께 전라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여 광주, 순천, 목포 등지에 교회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여전도사 박귀임을 중심으로 한 순천교회가 가장 활발하였는데, 이들은 1950년 4월 전라남도 순천에서 대한기독교오순절교회를 창립하였다.

새로운 교단이 창립된 지 2개월 후에 6 · 25전쟁이 일어났고, 미군 오순절파 군목이었던 엘라우드(Ellowed)가 한국에 오게 되면서, 그의 소개로 한국의 오순절파는 미국의 하나님의 성회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1952년 미국 하나님의 성회 아시아 선교부장 오스굳(Osgood)이 한국을 방문하고, 1953년에 원래 중국 선교사로 활동하던 체스넛(Arthur B. Chesnut)이 정식 선교사로 파송되어 한국에 새로운 오순절운동이 시작되었다. 교단의 명칭은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로 정해졌고, 체스넛이 총회장이 되었으며, 교역자 양성기관인 순복음신학원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한국의 오순절운동은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지원 속에서 발전하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하나님의 성회는 세계적인 부흥사들을 초청하여 집회를 열었다. 1957년 중앙청 앞 집회, 1958년 전국 주요도시 순회 집회를 개최하였고, 1959년에는 미국 하나님의 성회는 한국을 특별전도 지역으로 설정해서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서대문에 순복음부흥회관이 세워졌고, 대대적인 부흥집회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선교사가 주도하였으나 곧 바로 조용기 목사가 책임자가 되었고, 한국 사회에 오순절운동을 확산시키는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이것이 발전하여 오늘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되었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국의 최대 교회일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제일 큰 교회로 평가받게 되었다. 한국의 오순절운동은 세계 오순절운동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계속 발전하여 한국의 주요 교단의 하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하나님의 성회는 분열과 합동을 반복하였다. 1953년 하나님의 성회로 출발한 이후 1957년에 미국의 하나님의 성회 측과 기존의 오순절교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서 분열하였으나, 이들은 1972년 다시 합동하였고, 초기의 주요 멤버인 허홍은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1981년 장로교에서 조용기 목사에 대한 이단시비가 일어나자 일부 인사들이 여기에 동조하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 탈퇴하여 예수교대한하나님의 성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1980년대를 지나가면서 이 같은 시비는 일단락되었고, 한국 교회에서 오순절 운동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었다. 그 결과 1991년 양측이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라는 이름으로 통합을 결의하였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는 한국의 보수적인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1996년에 진보적인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도 가입하였다.

의의와 평가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는 현대 기독교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인 오순절운동을 한국에 소개했으며, 중생, 성령세례, 신유, 축복, 재림의 오중복음은 한국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한국 기독교의 하나의 커다란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성령의 능력을 통한 성공적인 삶에 초점을 두는 조용기 목사의 메시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과 더불어서 한국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급하고 강한 바람: 조용기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그리고 오순절운동』(박명수, 서울말씀사, 2012)
『여의도순복음교회 50년사』(여의도순복음교회, 2008)
『하나님의 성회 교회사』(국제신학연구원, 서울서적,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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