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01년 충청북도에 설립된 최초의 개신교 교회.
개설
연원 및 변천
1901년 말 신대리를 방문한 북장로교 선교사 밀러(Frederick S. Miller)는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처음에는 오천보의 집에서 예배를 보았지만, 이후 초가삼간 예배당을 마련하였다. 이때 오천보의 부인 이춘성은 인근 마을을 순회하며 기독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1905년 청주로 이주한 밀러는 그 후 보은, 괴산, 옥천, 영동, 조치원, 옥산 등지를 두루 순회하며 신앙공동체의 조직에 나섰다. 또한 이춘성 등 전도인들의 활동은 멀리 충주까지 이어졌다.
현황
1970년대에 건축된 붉은 벽돌 예배당의 신대교회 마당에는 ‘이춘성전도부인공덕비(李春成傳道婦人功德碑)’와 1945년 장로가 되어 해방 후 혼란기에 교회를 지킨 사람을 기리기 위한 ‘오을석장로추념비(吳乙錫長老追念碑)’가 있다.
참고문헌
- 『믿음의 흔적을 찾아-한국의 기독교 유적』(송현강·이순자·이진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1)
- 『충청도 선비들의 믿음 이야기』(이덕주, 진흥, 2006)
- 『충북기독교백년사(1900-2000)』(전순동, 충북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사업회, 200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