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7월 1일 창간된 구세군 기관지로, 처음에는『구세신문(救世新聞)』이라는 제호로 간행되었다가 1949년 5월 1일부터『구세공보(救世公報)』로 이름을 바꾸었다. 『구세공보』는 국내외의 구세군 사업과 교계의 중요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1908년 10월 1일 선교를 위해 조선에 도착한 호가드(Colonel R. Hoggard) 정령은 사역한 지 8개월 만에 구세군이 급성장하자 1909년 7월 1일 기관지『구세신문(救世新聞)』을 창간하였다. 이는 신자들에게 구세군의 가르침과 경영을 명백히 알리고,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구세군의 선교사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오지에까지 월보를 보내 사람들을 격려하고자 함이었다. 즉 ‘조선 구세군의 공보(Official Gazette of the Salvation Army in Korea)’가 그 목적이었다.
1909년 창간 당시『구세신문』은 순한글 타블로이드 8면으로 4호 활자로 인쇄하였다. 1917년 7월호부터는 『救世新聞』의 한문 제호에 한글 토를 달고 국한문 혼용으로 발행하였다. 1940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는 일본어와 한글이 혼용되었다. 1942년 일제의 강압으로 폐간되었던 『救世新聞』은 1949년 5월 15일 『구세공보』의 제호로 복간되었다. 1979년 3월호부터는 가로쓰기로 편집되었고, 2003년 1월호부터는 전면 칼라판으로 제작되고 있다.
1909년 7월 1일 창간호는 「회개인에게 하난 규칙」, 「구세군 조직」, 「구보(救報)일통」, 「구세군문답」, 「구세군대장」과 함께 「동서기문」, 「만국지리」, 「상식문답」 등으로 구성되었다. 1918년에는 부인들을 위한 별도의 항목을 신설하여 여성들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시키는데 주력하였다. 이어서 1921년부터 ‘금주특집호’를 발행하여 금주 및 금연 운동의 전국 확산에 일조하였다. 금주 및 절제 특집호는 해방 이후에도 3·1절 기념으로 발행되었다.
『구세공보』는 지난 2003년 지령 1,000호를 돌파한 기독교계의 최장수 월간지로 2015년 현재에도 간행되고 있다. 한국 근·현대의 시기에 주목할 만한 선교 활동을 벌인 구세군의 기관지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