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교회는 군산과 김제의 교회를 다니던 남전리 사람들이 1900년 봄 이윤국의 집에 모이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1901년 초가 5칸의 예배당을 마련하고 이어 도남학교를 운영하면서 동네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1919년 4월 4일 익사 솜리장터에서 있었던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바로 남전교회와 도남학교의 교인들이었다.
남전교회는 1900년 봄 시작되었다. 원래 남전리 사람들은 군산 구암교회와 김제 송지동교회를 다녔는데, 그 해에 남전리 이윤국 영수(領袖)의 집에 모이게 되면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당시 담당 선교사는 전킨(William M. Junkin)이었다. 그들은 1901년 초가 5칸의 예배당을 마련했고, 1921년에는 기역자 예배당을 증축했다. 또 도남학교를 운영하여 마을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전북 지역에서는 3월 5일 처음으로 군산 영명학교 학생들과 교인들이 만세를 불렀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는 남전리 출신이었다. 그리고 1919년 4월 4일 익산 솜리장터에서 있었던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바로 남전교회의 교인들과 도남학교의 학생들이었다.
이날 시위에서 도남학교 교사 문용기 등 4명의 교인이 희생되었다. 문용기의 시신은 오산 상신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면서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남전교회는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에 소속되어 있으며, 김연태 목사가 시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