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898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벨에 의해 설립된 목포양동교회는 1919년 3월 21일에 일어난 목포 3 · 1만세운동의 중심지였다.
1898년 봄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벨은 목포 양동에 임시주택을 짓고 한국인들과 함께 예배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목포양동교회의 출발이다. 동년 11월 목포에 도착한 의료선교사 오웬(Clement C. Owen)의 진료 활동으로 교회는 더욱 성장하였다. 1900년 8월 첫 세례식이 있었고, 1903년에는 300여 명의 교인들이 힘을 합쳐 예배당을 건립하였다. 1906년 목포 지역의 부흥운동으로 교세(敎勢)가 확장되자 교인들이 다시 교회당을 짓게 되면서 1911년 석조예배당을 완공하였다.
1911년 준공된 목포양동교회 예배당은 전형적인 서양식 조적조 건물로서 1982년 한차례의 증축과정을 거쳐 계속 사용 중이다. 예배당 왼쪽 출입구 위에는 “大韓隆熙四年(대한융희4년)”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건물 옆에는 ‘선교107년 기념비’와 ‘순교자 박연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