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05년 3월 10일, 한국에 진출한 미국 북감리회의 선교 정책에 따라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 설립된 교회로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교인이 학살되고 교당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은 교회.
개설
내용
이 사건의 주모자가 수촌리 청년들이라고 생각한 일제는 4월 15일 새벽 보복에 나서 수촌리 가옥 42호 중 38호를 전소시켰고, 주민들은 총검에 희생되었다. 그리고 김교철 · 김덕근(金德根) · 김덕삼(金德三) · 김명우(金明友) · 김여근(金汝根) · 김응식(金應植) · 김응오(金應五) · 김종학(金種學) · 김황운(金黃雲) · 김흥삼(金興三) · 백순익(白順益) · 이순모(李順模) · 정순영(鄭淳榮) · 차인범(車仁範) 등이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김교철은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수촌리와 제암리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참상은 당시 현장을 방문한 선교사 스코필드(F. W. Scofield)의 언론 활동과 헨리 정(Henry Chung)의 『The Case of Korea(1921)』 등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져 일제를 궁지에 몰아 넣었으며, 일제의 통치 정책의 변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방화로 전소된 예배당은 1922년 4월 아펜젤러(H. D. Appenzeller)와 노블(W. A. Noble)의 지원을 받아 초가 8칸으로 신축되었으며, 1932년 현재 위치로 다시 이전되었다. 1953년 3월에는 목조 예배당(20평)을 신축했고, 1965년 6월 창립 60주년을 맞아 다시 양옥 예배당(57평)을 신축하였다. 1962년 3월에는 스코필드 박사가 참석한 가운데 사은회가 수촌교회에서 개최되었다.
현황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수촌교회100년사편찬위원회 편, 『수촌교회 100년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수촌교회, 2000)
- 홍석창, 『수원지방 3·1운동사』 (1981)
- Chung, Henry, The Case of Korea. (New York: Fleming H. Revell Company, 1921)
기타 자료
- 『동아일보』 (1962.3.21., 1987.2.26., 1989.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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