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덕정은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와 동학 관련 성지이다. 이곳은 1749년 경상도관찰사 민백상이 세운 도시청 건물인 관덕당의 연병장 터로서 경상감영의 대표적인 형장이었다. 이 형장에서 영남 지역 최대 천주교 순교자가 나왔으며, 지금까지 17명의 순교자가 알려져 있다. 영남의 유일한 성인인 이윤일 요한의 유해를 그의 처형지에서 모시고 있는 관덕정 순교기념관은 이윤일 요한 성인과 관덕당에서 순교한 복자 10위(복자 1위는 마산교구에서 현양), 경상감영에서 옥사한 복자 10위에 대한 현양 사업을 하고 있다.
관덕정(觀德亭)은 대구광역시 중구 관덕정길 11(남산2동 938의 19), 박해 시대의 순교 주1에 세워진 천주교 주2 역사 기념관이다. 이곳은 1749년(영조 25), 경상도관찰사 민백상(閔百祥, 1711~1761)이 세운 도시청(都試廳) 건물인 관덕당(觀德堂)의 주3 터였다.
관덕당은 1749년에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 민백상이 대구 읍성(邑城)의 남문, 즉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밖의 서남쪽 200보 지점에 세운 정면 3칸의 중층 주4로 무과의 하나인 도시(都試)를 행하던 도시청이었다. 관덕당은 1721년에 서문에 세워진 유생들의 교육기관인 낙육재(樂育齋)와 더불어 문무 교육의 상징이었다. 또한 주5가 있을 때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푸는 축하 장소이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죄인을 처벌할 때는 관덕당 연병장에 주6을 차리고 죄수를 처형했다. 따라서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절 경상도 전역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대구감영으로 이송되어 이곳 관덕당 형장에서 순교했다.
1816년(순조 15) 을해박해(乙亥迫害) 때 김종한(金宗漢), 고성운(高聖云), 고성대(高聖大), 김희성(金稀成), 김약고배(金若古排), 구성열(具性悅), 이시임(李時任)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또한, 1827년(순조 27) 정해박해(丁亥迫害) 때 체포되어 12년간 옥살이를 한 박사의(朴士儀), 김사건(金思健), 이재행(李在行)은 1839년(헌종 5)에 처형되었다. 1867년(고종 4)에는 이윤일(李尹一), 1868년(고종 5)에 박대식 등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그 가운데 이윤일(요한)은 1984년에 주7에 올랐고, 다른 11명은 2014년에 복자가 되었다. 이 외에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김예기와 김인기 형제, 박수연, 송 마태오, 박 요셉 등이 관덕당 형장에서 순교했다.
동학(東學)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도 1864년(고종1)에 관덕당 연병장에서 처형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천도교(天道敎) 측의 김연국(金演國)이 최제우의 처형장임을 고증한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관덕당 건물을 사들였다. 그 뒤 그의 아들들이 ‘상제교(上帝敎)’라는 간판을 달았는데, 해방 후에는 시천교(侍天敎)의 대구지부 사무실로 사용되었다고도 전한다. 천도교에서는 1964년 주8 주9 100주년을 기려 주10에 최제우의 동상을 건립하였다. 2017년에는 최제우의 처형 장소인 동아쇼핑과 현대백화점 사이 앞길에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를 세웠다. 대구광역시에서는 대구감영이 있던 종로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400년 된 회화나무를 최제우 나무로 지정하였다.
관덕당이란 땅과 정자를 포함해서 그 주변을 일컫는 광의의 개념이었다. 박해시대 신자들은 주로 장이 열리던 날, 관덕당 연병장 어느 지역에서 처형당했고 그들의 시신은 주변 일대인 아미산 기슭에 묻혔다. 그런데 1906년에 대구 읍성이 철거되면서 남문 밖의 관덕당은 도시청의 역할을 잃었다. 이에 관찰사 신태휴와 서상돈 등 대구광문사 회원들은 관덕당에 사범학교(師範學校)를 세웠지만 이듬해인 1907년에 사범학교가 폐쇄되고 이를 일본이 점유했다.
1916년, 관덕당 근처로 측후소(測候所)가 이전하면서 관덕당 주변에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20년대, 대구에 신시가지가 형성되면서는 관덕당과 연병장이 분리되어 형장터에는 주거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1930년대, 관덕당 앞마당에 주11이 설치되어 ‘새장 터’ 또는 ‘남문시장’으로 불렸다. 이후 관덕당은 허물어지고 일대는 차츰 인가들이 들어섰다. 1937년, 남문시장은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대구 대교구에서는 한국천주교회 200주년(1984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관덕당 형장에서 순교한 분들과 대구감영에서 옥사한 분들을 기리는 뜻으로 관덕당 형장 마당(혹은 시신 매장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관덕정 순교기념관을 건립하고 1991년 5월 31일에 개관했다. 화강석 건물 벽은 순교자들의 신앙과 얼을 기리고 있으며, 외벽 주12는 하느님을 향한 순교자들의 사랑을 구현하고 있다. 교구에서는 이보다 앞선 1월 20일에 영남 지역의 유일한 성인이며 교구 제2주보인 이윤일의 유해를 관덕정 경당 제대 아래 봉인했다. 2007년에는 기념관 옆에 신관도 세웠다.
1991년에 개관한 관덕정은 2020년에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지하에는 성당과 메모리얼홀, 유해 현시실을 갖추고, 1층에는 관덕정 순교자와 연표, 2층에는 영남의 교우촌(校友村)과 관덕정 역사와 자취, 박해시대 천주교 교리서와 신앙 유물을 갖추고, 3층에는 스탠드 글라스로 이윤일의 생애를 소개하고 그의 관련 문서들이 전시하여 두었다. 3층 오른쪽에는 단청(丹靑)이 포도와 알파, 오메가 등으로 채색된 한옥 주13이 있다.
관덕정 순교 성지는 영남 지방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가 탄생한 곳이고, 그만큼 성인과 복자가 많이 난 곳이다. 영남의 유일한 성인인 이윤일 요한이 처형된 곳에 선 관덕정 순교기념관은 이윤일 요한 성인과 관덕당에서 순교한 복자 10위, 경상감영에서 옥사한 복자 10위를 비롯하여 경상도 지역 순교자들의 삶과 주14을 발굴하고 순교자 주15 사업을 하고 있다. 매년 1월 21일을 전후하여 요한제를 열고, 국내외 성지 순례 안내, 교회사 강좌 등 여러 행사를 하는데, 주로 후원 회원들과 봉사자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한다. 주16 『관덕정』을 발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