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국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동학, 천도교, 시천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상제교를 창건한 종교인.
이칭
  • 구암(龜菴)
  • 치구(致九)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동학운동
  • 본관강릉(江陵)
  • 사망 연도1944년
  • 성별남성
  • 주요 경력천도교 최고지도자|시천교 최고지도자|상제교 교주
  • 주요 저서상제교대헌(上帝敎大憲)
  • 출생 연도1857년
  • 출생지강원도 인제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11월 0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연국은 동학, 천도교, 시천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상제교를 창건한 종교인이다. 동학 지도자로서 동학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았으나 풀려나 천도교와 시천교 최고지도자로 활약하였다. 그 후 시천교총부를 건립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걸은 후 상제교를 창건하여 계룡산 신도안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였다.

정의

동학, 천도교, 시천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상제교를 창건한 종교인.

인적사항

김연국(金演局, 1857~1944)은 강원도 인제군 출신으로 자는 치구(致九), 호는 구암(龜菴)이다. 의암(義菴) 손병희, 송암(松菴) 손천민과 더불어 삼암(三菴) 중 한 사람이다.

주요 활동

1872년 동학에 입도(入道)한 뒤 곧바로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의 제자가 되어 그를 수행하였다. 1894년 11월 동학운동 2차 봉기에서 동학농민군의 대도소장으로 충청도 보은에서 기병하여 북접(北接)에 가담하였으나,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패한 후 최시형의 피신 생활을 함께하였다. 1901년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경성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04년 12월에 출옥하였다.

1906년부터 손병희가 창건한 천도교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07년 천도교 대도주 자리에 올랐으나 천도교의 요직을 손병희계의 문명파가 장악하자, 1908년에 탈퇴하여 이용구가 조직한 시천교로 이적해서 최고지도자인 대예사(大禮師)에 올랐다.

1912년 이용구가 죽은 후에 송병준이 시천교 운영에 개입하자, 그를 2인자 자리인 종례사에 앉혔다. 1913년 초 결국 송병준에 반발하면서 김연국계인 권병덕이 간부직을 사임하고 낙향하자, 시천교 본부와 결별하고 1913년 3월에 독자적인 시천교총부를 설립하였다.

1920년대에 들어와 계룡산 신도안으로의 이전을 추진하여 1921년에 두마면에 대본원을 건립하고, 1922년에는 남선면에 본교당을 설립하였다. 1924년에 자신의 생일에 맞추어 대본원 낙성식과 함께 신도안으로 이주하였다.

1925년에는 상제교(上帝敎)로 개명하고 『상제교대헌(上帝敎大憲)』을 반포하고는 경성 재동에서 계룡산 상제봉 아래 두마면으로 본부를 옮겼다. 신도안에는 상제교인들의 신앙촌이 만들어졌다. 1937년에 국방헌금 600원을 헌납하였고, 1938년에는 상제교인들이 일본군의 안녕을 빌며 매일 한 숟가락씩 성미를 모았다며 432원 54전을 헌납하였다.

참고문헌

  • 논문

  • - 박맹수, 「동학계 신종교의 사회운동사」(『한국종교』 38,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2015)

  • - 김정인, 「일제 강점기 계룡 지역과 민족종교운동」(『충청문화연구』 11,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3)

  • - 조규태, 「동학계 신종교 상제교의 종교적 특성과 민족적 성격」(『소통과 인문학』 11, 한성대학교 인문과학연구원, 2010)

주석

  • 주1

    :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행을 시작함. 우리말샘

  • 주2

    : 동학 조직 가운데 이대 교주 최시형이 이끄는 충청도 지역의 동학도를 이르던 말. 우리말샘

  • 주3

    : 김연국(金演國)이 창시한 동학 계통의 한 종교. 계룡산에 본부가 있고 신앙 대상은 상제로 천도교와 교리가 비슷하나, 사당을 설치하여 신위를 안치하며 검은 통으로 된 모자를 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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