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마리아(金嗎利亞, 1903~1970)는 한성부 남서 두모방(성외) 왕십리계 신당리동(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서 아버지 김동수(金東守)의 딸로 태어났다.
1922년 솔밭관 한족공산당 군대가 고려혁명군으로 개편된 후 정치부원으로 입단하여 피복창(被服廠) 주임이 되었다. 1925년 8월 청산리 대첩에 중대장으로 참가하여 김좌진을 도운 이범석과 결혼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滿洲事變) 발발 이후 이범석이 마잔산〔馬占山〕 부대와 함께 중국군으로서 항일전에 참여할 때 중국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한 특기를 살려 마잔산 장군의 통역관을 지냈다. 마잔산 부대가 계속 패하면서 러시아로 넘어가자 톰스크(Tomsk)에 있는 수용소에서 8개월간 생활하고 1933년에 풀려났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된 이후 중국 중앙군관학교 서북분교에서 러시아어 교관으로 생활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追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