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막새는 목조건축 지붕의 기왓골 끝에 사용되는 기와로 보통은 연화문이 장식된 예가 많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독특하게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 모습이 표현되어, ‘신라의 미소’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경주 사정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 지역은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 절터로 추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경주 사정동 일대에서 ‘영묘지사(靈廟之寺)’ 또는 ‘대영명사조와(大令妙寺造瓦)’ 등의 기와가 수습되면서, 출토지를 영묘사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영묘사는 선덕여왕(재위 632~647년) 시대인 635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출토 지역을 고려하면 얼굴무늬 수막새의 제작 시기는 7세기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수막새는 처음부터 희귀하고 이색적인 외형으로 주목받았다. 신라 기와에 관심이 있었던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1934년에 경주의 골동품점에서 수막새를 구입하였고 훗날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가지고 갔다. 이후 유물의 행방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으며, 1972년 10월 소장자가 직접 찾아와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일반적으로 와당은 틀에 찍어 대량 생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수막새는 기본적인 형태만 틀로 만들고 손으로 빚어 완성하였다. 도드라진 이마에 반듯하고 듬직한 코가 연결되며, 가늘고 긴 두 눈이 표현되었고 입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광대가 강조된 뺨도 옅은 미소를 돋보이게 한다. 틀에 찍어 만든 완성품이 아니라서, 두 눈과 양쪽 광대 표현은 다소 비대칭적인 모습이다. 이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표정이 되었고 생명력 가득한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비록 오른쪽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소실되었지만 천진한 미소를 담은 얼굴의 모습은 잘 남아 있다.
기와에 얼굴의 형상을 표현한 예는 신라 황룡사나 백제 미륵사 절터에서도 출토되었지만 이 수막새의 외형과 독특한 미소에 비견할 만한 유물은 많지 않다. 기와는 건물의 상부에 사용한 건축재로, 위엄을 높이고 재앙을 피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문양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얼굴무늬도 재해를 방지하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나름의 주술적 표현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손으로 빚어 만든 유일한 기와로 알려져 있으며, 우수한 제작 기술과 빼어난 감각이 돋보이는 유물이다. 또한 생명력 넘치는 미소를 통해 신라인의 미감과 예술적 성취를 가늠할 수 있다. 7세기에 제작된 수막새로 전례가 많지 않고 신라의 기와 제작과 예술성을 고찰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의미가 크다. 2018년 11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