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년(순조 2)에 정의공(貞義公) 이로(李魯, 1544∼1598)를 추모하기 위해 고성이씨 문중에서 세운 서원이다. 처음에는 경덕사(景德祠)로 창건하였다가 후에 낙산서원으로 승원(陞院)하였다. 하지만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40년 후손들과 유림들이 뜻을 모아 옛 터에 낙산서당(洛山書堂)으로 복원하였다.
『송암집(松巖集)』 연보에 의하면 1802년에 이로를 제향하기 위해 경덕사를 건립하고, 낙산서원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당시 지애(芝厓) 정위(鄭煒, 1740∼1811)가 봉안문(奉安文)을 찬하였다.
의령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인 이로는 본관이 고성(固城)이며, 자는 여유(汝唯), 호는 송암(松巖) , 시호는 정의(貞義)이다.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종도(趙宗道)와 함께 창의(倡義)할 것을 약속하고 귀향하여 삼가 · 단성으로 나가 의병을 일으켰으며, 경상우도초유사(慶尙右道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의 종사관(從事官) · 소모관(召募官) · 사저관(私儲官)으로도 활약하였다. 그 후에 형조좌랑 겸 기주관 · 비안현감 · 정언 등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사후에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서원에는 1852년(철종 3) 간행한 이로의 문집인 『송암집』 과 이만승의 문집 『괴당집(槐堂集)』의 책판 76매가 남아있다. 『송암집』에는 소모문과 모략문이 들어있는데 문장과 내용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의 조카인 이만승이 쓴 『괴당집』은 이만승이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로서 국가에 충성하고 우애있게 지내라고 당부한 것이다. 『송암문집 및 괴당집』 책판 76매는 1979년 12월 29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의령읍 의병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정문은 경앙문(景仰門)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갖춘 기와집으로 가운데는 마루이며 양쪽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 외미에는 낙산서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동재와 서재는 복원되지 못하였다. 매년 음 2월 29일에 향사를 지낸다.
낙산서원에 보관되어 왔던 책판들은 의령지역 출신 의병장이었던 이로와 이만승의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 당시의 행적과 시대 상황을 상세히 알려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