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곡서원 ()

유적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에 있는 조선후기 이천경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이칭
이칭
청곡사, 청곡향현사, 청곡향사
정의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에 있는 조선후기 이천경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개설

조선시대 단성현(丹城縣)에 속하였던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에 설립된 서원이다. 1702년(숙종 28)에 일신당(日新堂) 이천경(李天慶)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림(士林)이 창건하였는데, 1796년(정조 20)에 효자인 양촌(陽村) 유지원(柳之遠)을 추향(追享)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것을 1924년에 복원하였다.

1983년에 다시 중수하여 현재는 정문, 강당,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고 경내에 연못이 있다. 『일신당문집(日新堂文集) 및 필첩책판(筆帖冊板)』이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1995년 10월 이후 도난당하였다.

역사적 변천

20세기 초반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이 찬한 「청곡서원중건기(淸谷書院重建記)」와 1851년(철종 2) 이상희(李相羲)가 찬한 「청곡서원기(淸谷書院記)」에는 1702년에 일신당 이천경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림들의 공의로 청곡서원이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서원가고(書院可攷)』 등의 조선시대 문헌에는 청곡사우(淸谷祠宇), 청곡향현사(淸谷鄕賢祠), 청곡사(淸谷祠), 청곡향사(淸谷鄕祠)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양촌선생실기(陽村先生實記)』에는 유지원이 정조 연간 청곡사에 제향되었다고 한다.

1855년(철종 6) 간행된 『일신당문집』의 권말에 ‘을묘맹추상한 청곡서원 개간(乙卯孟秋上澣淸谷書院開刊)’이라는 간기(刊記)와 이상희의 기문(記文)을 통해 1796년 이후부터 1851년 사이에 서원으로 승원(陞院)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서원 철폐령에 따라 1868년에 훼철된 후 50여 년이 지난 1922년에 사림들의 찬반 논의를 거쳐 복원(復院)하기로 결의하고, 1924년에 묘궁(廟宮)을 구제(舊制)에 따라 복원하였다.

내용

서원이 있는 자리는 이천경이 만년에 청곡(淸谷)에 일신당(日新堂)을 건립하여 강학장수(講學藏修)하던 곳이었다. 그는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 한강(寒岡) 정구(鄭逑),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 덕계(德溪) 오건(吳健), 모촌(茅村) 이정(李瀞), 각재(覺齋) 하항(河沆), 개암(介庵) 강익(姜翼)등의 학문과 덕행을 본받아 익혔다. 서원 내에 보관하던 중 도난된 『일신당 문집 및 필첩책판』은 이천경의 후손들이 편집하여 1855년에 청곡서원에서 간행한 것이다. 이천경은 효행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는데, 유지원 역시 효행이 지극하여 후세에 그가 살던 집을 효자정(孝子亭)이라 일컫기도 했다. 이런 공통점으로 인해 1796년 유지원을 추향한 것으로 보인다.

서원은 전학후묘의 배치로 되어 있다. 정문인 경덕문(景德門)은 솟을대문이며, 강당인 경제당(敬齊堂)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내삼문(內三門)을 지나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의 사당인 백원사(百源祠)가 있다.

이외에도 동재인 덕성재(德盛齋)와 서재인 심향재(尋向齋)가 있으며, 서원 옆에는 복원한 일신당이 있다. 일신당은 서원 훼철 당시 함께 철거되었던 건물이었지만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건물로 복원하여 일신재(日新齋)라고도 한다. 매년 2월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는데, 훼철되기 전까지 이천경과 유지원을 제향하였지만, 복원 이후에는 이천경만 제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사우에서 서원으로 승원하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서원이다.

참고문헌

『교남지(嶠南誌)』
『서원가고(書院可攷)』
『서원지총서(書院誌叢書)』
『양촌선생실기(陽村先生實記)』
『일신당선생문집(日新堂先生文集)』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회당선생문집(晦堂先生文集)』
『경남의 서원』(구산우 외, 선인, 2008)
「도내각읍서원훼철사괄성책초」(이우성 편, 『서벽외사해외수일본총서』15, 아세아문화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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