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정조 13)에 두문동 72현의 한 분인 문원공(文元公) 전조생(田祖生, 1318∼1355)과 그의 손자 회정(晦亭) 전자수(田子壽)를 향사하기 위해 담양전씨(潭陽田氏) 후손들과 지방 유림에 의해 건립되었다.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담양전씨 문중에서 관리한다.
1789년에 건립하여 1820년(순조 20)에 유림에서 사액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22년에 전조생의 문집인 『문원공경은전선생실기(文元公耕隱田先生實紀)』를 간행하였으며,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서원의 복원 계획은 1935년 12월부터 세웠지만 실제 복원은 1945년에 이루어졌다.
전조생은 자가 계경(季耕), 호는 경은(耕隱), 시호는 문원공으로 찬성첨의부사에 이어 공조전서를 지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두문동으로 들어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켰다. 전자수는 자가 백인(伯仁), 호는 회정 또는 월호(月湖)로 광정대부 첨의평리 겸 집현관 대제학을 지냈다.
경내의 건물로는 별묘(別廟)와 강당 등이 있다. 강당은 유생을 교육하고 유림들이 모임을 갖던 장소로서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3칸에 마루를 두고 양옆에는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별묘인 상덕사(象德祠)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상덕사에는 위패와 문집 및 『태암유계안(泰巖儒契案)』, 『태암서원손의록(泰巖書院損義錄)』 등 87책의 전적을 소장하고 있다.
또 전조생의 계자시(誡子詩)와 경학문(警學文) 비석 두 기가 세워져 있다. 또한 북쪽에는 의령군 용덕면 죽전리에 입향한 운암공(雲庵公) 전훈(田勳)과 봉례공(奉禮公) 전보원(田甫原)의 제단비(祭壇碑)가 있다. 매년 음력 2월 말 하정일(下丁日)과 10월 10일 춘추 2회에 걸쳐 유림에 의해 향사가 봉행된다.
의령지역의 대표적 사족이었던 담양전씨의 문중서원으로서 조선 후기 향촌사회를 실질적으로 영도하였던 향촌 기구로서의 그들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