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필사본. 필사자 미상. 명대 주유가 지은 역사소설 『개벽연역통속지전』(6권 80회)을 완역한 책이다.
규장각에 소장된 한글 필사본은 낙선재본이다. 권지일에는 본문 시작 전에 작품을 ‘개벽연역’이라 명명하게 된 이유와 서문에 해당되는 ‘ᄀᆡ벽연역서’와 ‘부록텬디판셜’이 수록되어 있는데, 중국 원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규장각 소장본은 전체 80회 가운데 제52회부터 제65회까지가 빠져 있다. 누락된 제52회부터 제65회 부분은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창기(1936∼1997) 소장본이며 권지오 1책이다. ‘공육(共六)’이라 적혀 있어 원래 규모는 전체 6권 6책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연세대학교에 4권 4책으로 된 『개벽연의』가 있으며, 민간 세책본으로 임형택 소장본이 있다.
『개벽연역』의 내용은 중국 역사의 시원(始原)인 반고(盤古)의 천지개벽부터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키기까지의 이야기이다. 반고의 천지개벽 이후 천지인(天地人) 삼황(三皇)이 있었으며, 유소씨(有巢氏), 수인씨(燧人氏), 복희씨(伏犧氏), 신농씨(神農氏), 헌원씨(軒轅氏)의 오제(五帝)가 있었다. 유소씨는 백성들에게 집짓는 방법을, 수인씨는 불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복희씨는 결승(結繩) 문자와 팔괘를 만들고, 신농씨는 농사짓는 법을 가르친다.
이후 요(堯)임금 시대에 태양이 열 개라 곡식이 말라 죽고 초목에 불이 붙자 예(羿)가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다. 순(舜)임금이 왕위를 선양받고, 다시 우(禹)임금이 왕위를 선양받아 나라를 다스린다. 하(夏)나라에 이르러 걸왕(傑王)이 주색에 빠져 향락을 즐기다 죽임을 당한다. 하나라를 물리친 상(商)나라 탕왕(湯王)이 관리를 세우고 화폐를 만들어 백성을 구제한다. 그러나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을 폐위시키고 섭정하다가 다시 태갑을 복위시킨다. 상나라의 주왕이 달기(妲己)를 총애한 나머지 백성을 돌보지 않고 폭정이 심해진다. 이에 주나라 무왕이 달기를 참수하고 주왕은 자결한다.
『개벽연역』은 『삼국지』 『열국지』 『동한연의』 『서한연의』 『당진연의』 『남송연의』 『북송연의』 등과 함께 조선시대에 번역된 대표적인 중국 역사소설이다. 신화와 전설을 토대로 중화민족의 역사를 부연하고, 백성을 보살피는 어진 임금을 예찬하며 포악하고 횡음무도한 임금을 질타함으로써 백성이 근본이 되는 민본사상(民本思想)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선에 전래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관련 기록에 근거해 볼 때 18세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역사소설 번역필사본은 소설의 오락적 기능 외에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과 교훈을 습득할 수 있는 학습서의 역할도 겸하였다.
번역 특징은 전체적으로 원전에 충실하여 번역하였으나 일부분은 조선의 실정에 맞게 변용된 모습들도 나타난다. 예컨대, 중국소설의 형식인 발어사와 매회 마지막에 다음 회를 기약하는 상투어 사용 배제, 시나 사(詞)의 생략, 내용의 첨가, 삭제, 축약 등이 그러하다. 조선시대 번역소설의 유입과 번역·유통 및 향유 양상을 살필 수 있는 문헌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