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필사본. 필사자 미상. 명나라 웅대목이 지은 『대송중흥통속연의』(80회)를 번역한 책이다. 『북송지전(北宋志傳)』, 『전한지전(全漢志傳)』, 『당서지전통속연의(唐書志傳通俗演義)』 등도 웅대목의 대표작이다. 우리나라로 유입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역사연의소설이 대거 전해진 16∼17세기로 추정된다.
한글본 『무목왕정충록』은 원래 12권 12책이었으나 권3∼5, 9, 11이 유실되어 현재 7책만 장서각에 전한다. 이 책은 제12권에 ‘상장집서(上章執徐) 탕월(湯月) 상한(上澣) 필서(筆書)’라는 필사기가 있어 1760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영빈방인(暎嬪房印)’이라는 장서인이 찍혀 있다. 영빈 이씨(1696∼1764)는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무목왕에 대한 어제 제문을 국문으로 번역하여 덧붙여 놓았다. 번역 형태는 직역 위주이나 서사 줄거리가 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사나 운문 등은 생략되었다.
『무목왕정충록』은 『송사(宋史)』 및 고본(古本) 『정충록(精忠錄)』, 민간 설화 등을 참조하여 남송의 역사를 배경으로 무장(武將) 악비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세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북송 말년 금나라 군사가 남침하자 휘종(徽宗)은 흠종(欽宗)에게 양위하고 태상황으로 물러앉는다. 금나라 군사가 퇴각한 후에도 흠종이 나라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자, 이강(李綱) 등 조정의 노장들은 모두 은거한다. 두 번째 금나라 군사의 남침으로 결국 휘종과 흠종은 포로가 되어 오국성(五國城)에 유폐된다. 이때 고종은 이강과 종택(宗澤)의 보좌를 받아 금릉에서 즉위한다. 악비는 금나라와 맞서 싸워 연승을 거둔다. 그러나 간신 진회(秦會)는 진퇴양난의 입장에 처한 금나라와 내통하여 화친을 주장한다. 결국 고종은 여러 장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나라와 화친한다. 국경이 정리된 후에도 금나라가 계속해서 남침하자 악비가 나서서 진격한다. 그러나 진회는 고종을 앞세워 악비를 회군하게 하고, 금나라 군대가 쳐들어올 여지를 만들어 준다. 마침내 진회는 악비를 모함하여 투옥시키고 조서를 위조해 악비 부자를 살해한다. 악비가 죽은 후 충혼이 현영(顯靈)하여 사절(死節)을 베풀고 진회는 나중에 명부(冥府)에서 천벌을 받는다.
악비에 대한 고사와 인물 형상화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593)이 쓴 「악비전(岳飛傳)」에서부터 『삼강행실도』의 「충신」편에 수록된 ‘악비열배(岳飛涅背)’, 1585년(선조 18)에 간행된 『회찬송악악무목왕정충록(會纂宋岳鄂武穆王精忠錄)』, 시가 및 시조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산되었다. 모두 악비가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보답하는(盡忠報國)’는 충신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악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대송중흥통속연의』 역시 이러한 문학 풍토 아래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읽히고 번역된 것으로 파악된다.
『무목왕정충록』은 낙선재본 소설로 현존하는 유일한 번역본이다. ‘영빈방인(暎嬪房印)’이라는 장서인이 찍힌 특별한 경우로, 영빈의 소설에 대한 애호를 엿볼 수 있다. 궁중에서 필사된 번역소설 가운데 『손방연의』와 『무목왕정충록』 2종에만 영빈의 인장이 찍혀 있어 구체적인 번역·제작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때문에 낙선재 번역소설 가운데 연대가 오래된 작품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