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필사본. 필사자 미상. 명대 가정(嘉靖) 연간 웅종곡이 지은 역사소설 『남북양송지전(南北兩宋志傳)』(20권) 가운데 『남송지전』 10권 10책(50회)을 번역한 책이다.
조선 후기 홍만종(1643∼1725)이 1678년(무오년)에 저술한 『순오지(旬五志)』, 완산이씨가 쓴 『중국소설회모본(中國小說繪模本)』(1762) 등에 서목이 보인다. 또한 온양 정씨가 필사한 『옥원재합기연』 표지 안쪽에도 여러 연의소설들과 함께 “남송연의”라는 한글 서명이 적혀 있다. 한글본 『남송연의』 7권 7책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유일한 번역필사본이다. 명대 금릉(金陵) 세덕당본(世德堂本)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하였다. 권지일과 첫면과 마지막 면에 ‘수양신한(首陽信翰)’과 ‘상촌향장(桑村香長)’이라 판각된 인장이 찍혀 있다. 권1과 권7의 마지막 면에 “병신년 음력 9월에 써서 후세에 전한다(歲在丙申季秋書傳于後昆)”라는 필사기가 있다.
책의 제목은 ‘남송지전’이지만 오대(五代) 당(唐) 명종(明宗) 926년 석경당(石敬瑭)의 출생에서부터 송(宋) 태조(太祖) 975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대 때, 석경당은 용맹하고 활도 잘 쏘았다. 석경당은 위주절도사 막하로 들어갔다가 이후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다. 당 명종이 죽고 민제(閔帝)가 즉위하지만, 형 노왕(潞王)이 민제를 죽이고 폐제(廢帝)로 즉위한다. 폐제에게 병권을 뺏긴 석경당은 반란을 계획하고 거란의 도움을 받아 당을 대파한다. 석경당이 왕으로 즉위하여 국호를 진(晉)이라 하고 대량(大梁)으로 천도한다. 석경당이 죽고 그 형의 아들인 중귀(重貴)가 왕으로 즉위한다. 요나라가 대량을 침범하여 진나라는 패망한다.
중원을 회복하기 위해 장수들의 추대로 유지원(劉知遠)이 장제(章帝)로 즉위하여 국호를 한(漢)이라 한다. 조홍은(趙弘殷)의 장자 조광윤(趙匡胤)은 의협심이 강해 장광원(張光遠), 나언위(羅彦威), 석수신(石守信) 등과 의형제를 맺는다. 조광윤은 미인 대설과 소설을 죽인 일로 옥에 갇혔다가 탈옥하여 관서로 피난가는 길에 시영(柴英)을 만나 의형제가 된다. 유지원이 죽은 이후 승우가 즉위하지만 한은 멸망하고 만다. 이에 한나라의 중신 곽위(郭威)가 장수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르고 국호를 주(周)라 한다. 모용언초(慕容彥超)가 남당과 결탁하여 주나라를 공격하지만, 패하고 모용언초는 자살한다.
주나라 태조가 죽고 진왕(晉王)이 세종으로 즉위하자, 북한(北漢)의 유숭(劉崇)이 요나라의 군사를 빌려 쳐들어온다. 세종은 고회덕(高懷德), 조광윤, 정은(鄭恩), 사언초(史彦超) 등을 보내 전투를 지휘하게 하여 대승을 거둔다. 세종은 강북을 평정한 이후 방종해져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 세종이 죽고 태자 양왕(梁王)이 즉위하나 장수들이 조광윤을 천자로 추대한다. 조광윤은 마침내 천하를 통일하고 조빈(曹彬)이 태조의 명을 받아 남당을 토벌한다.
『남송연의』는 오대(五代)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의 전쟁과 흥망성쇠 끝에 마침내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우고 조빈이 강남(江南)을 평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헌 기록들에 근거하면 『남송연의』의 조선 유입 시기는 17세기 이전이며 한글로의 번역은 18세기 중반 이전으로 추정된다.
한글필사본 『남송연의』는 원전과 대비하여 인명, 지명, 회목명의 한자음 표기에 오류가 보이므로 다른 국역본을 필사한 전사본이다. 그러나 정갈한 표지와 서체로 미루어 보건대 사대부가 이상의 집안에서 읽었으며, 현존하는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번역 특징은 원전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생략·축약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서사 전개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용을 추가하거나 문장의 순서를 바꾸어 번역한 경우도 있다. 출현하는 한글고어와 표기 형태로 미루어 보아 1776년(병신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