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영렬전 ()

고전산문
작품
명나라의 역사소설 『황명영렬전(皇明英烈傳)』의 번역본.
이칭
이칭
황명영렬전(皇明英烈傳), 황명개운영무전(皇明開運英武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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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명나라의 역사소설 『황명영렬전(皇明英烈傳)』의 번역본.
구성 및 형식

한글필사본. 필사자 미상. 명대 역사소설 『황명영렬전』(60회)을 번역한 책이다. 작자는 곽훈(郭勛)이라는 설과 서문장(徐文長)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판본은 크게 6권 60단(段)으로 이루어진 『황명영렬전(皇明英烈傳)』과 8권 60칙(則)으로 이루어진 『황명개운영무전(皇明開運英武傳)』, 서림(書林) 여군소간(余君召刊) 『영렬지전(英烈志傳)』, 20권 80칙으로 이루어진 『운합기종(雲合奇蹤)』(1616) 등이 있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는 낙질본 『운합기종』이 소장되어 있다.

낙선재본 『대명열렬뎐』의 원전은 명대 간본 『황명영렬전』이다. 줄거리가 달라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상주문, 시 등 고문의 번역을 생략하였으나 대체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였다. 이 외에 고려대학교에 완질(完帙)의 8책본이 있고, 낙질로 박순호 소장본과 임형택 소장본이 있다.

내용

『대명영렬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원나라 말년, 순제(順帝)가 황음과 실정으로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그때 옥황상제의 시중을 들던 금동옥녀(金童玉女)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명나라 태조가 되는 주원장(朱元璋)을 낳는다. 어려서부터 제왕의 기상을 띠었던 주원장은 18살 되던 해에 등유(鄧愈), 탕화(湯和), 곽영(郭英) 등을 만나 의기투합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자 여러 장군들이 주원장의 휘하로 모여든다. 싸움에서 원나라 군을 대파한다. 수 차례 원나라 군대를 격파하면서 만자해아(蠻子海牙), 진야선(陳埜先) 등 원나라 장수를 차례로 죽이고 금릉을 지키던 조량신(曹良臣)의 항복을 받고 마침내 금릉을 점령한다.

원나라 지정(至正) 18년에 화양왕이 병사한 뒤 중신들이 주원장을 왕으로 등극시키려 하나 주원장은 이를 거절하고 계속 전투를 벌여 금화(金華) 등지를 점령하고 원나라 장수 호심(胡深)을 귀순시킨다. 결국, 장사성(張士誠)을 사로잡고, 장사성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다. 태조는 장수들을 포상하고 정식으로 태조로 즉위하고 국호를 명(明)이라 한다. 그 뒤에도 태조는 북벌을 계속하여 중원에까지 이르고 마침내 연경을 함락한다. 태조는 승세를 몰아 서달(徐達)을 시켜 원나라 군사를 토벌하고 마지막 남은 운남까지 평정한다. 이로써 천하가 통일되고 태조는 공에 따라 장수들을 각각 제왕과 공후와 장수로 봉하여 각지에 주둔시킨다.

의의와 평가

『대명영렬전』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국가 창업과 이를 도운 공신들의 이야기로, 여러 역사서와 잡저(雜著), 필기류, 야사(野史) 등에 나오는 사건들을 엮어 소설화한 것이다. 낙선재본 『대명영렬전』은 낙선재문고에 남아 있는 번역소설 가운데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명대에 간행된 『황명영렬전』을 저본으로 하였지만 현재 전하는 『황명영렬전』과 비교해 보면 회목에 차이가 있어 다른 판본을 대역본으로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19세기 초 궁중에서 작성된 『대축관서목(大畜觀書目)』에 ‘황명영렬전 6책(皇明英烈傳六冊)’이 보이는데, 이 책은 현재 국내에 전하지 않는다. 『대축관서목(大畜觀書目)』에 언급된 『황명영렬전』이 낙선재본 『대명영렬전』의 원전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승정원일기』에 영조가 우윤(右尹) 심정보(沈廷輔)에게 『황명영렬전』 번역을 명하는 기사가 있어 번역자 정보와 그 시점이 유추된다. 심정보의 활동 연대와 한성부 우윤을 지낸 시점에 근거하면 1725년에 번역의 명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제(御製)까지 내리고 있어 『대명영렬전』에 대한 영조의 애호를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대명영렬뎐』(박재연, 선문대학교 중한번역문헌연구소, 1996)
「『승정원일기』 소재 소설 관련 기사 변증」(양승민, 『고전문학연구』26, 2004)
「낙선재본 『대명영렬뎐』 연구」(박재연, 『중국소설논총』6,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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