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연의 ()

고전산문
작품
명나라의 신마소설(神魔小說) 『봉신연의(封神演義)』의 번역본.
정의
명나라의 신마소설(神魔小說) 『봉신연의(封神演義)』의 번역본.
구성 및 형식

25권 25책. 한글필사본. 명대 신마소설 『봉신연의』(100회)를 번역한 책이다. 낙선재 구장본은 매권마다 3∼6회의 회목을 수록하였다. 회목을 원전과 대조해 보면 다른 것이 많고, 원전에 없는 회목도 보이고 있어 현전하는 『봉신연의』가 아닌 다른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전체적인 번역의 특징은 서사 전개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내용을 생략한 점이다. 조선의 사회 분위기와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 내용도 축약 또는 생략되었다.

낙선재본 외에 홍택주 소장본 16권 16책과 강촌재(江村齋) 소장본 25권 25책이 있다. 강촌재 소장본은 『남송연의』와 동일하게 ‘수양신한(首陽信翰)’과 ‘상촌향장(桑村香長)’이라 판각된 인장과 “병신년 음력 9월에 써서 후세에 전한다(歲在丙申季秋書傳于後昆)”는 필사기가 있다. 박재연 소장본 6권 6책본 서명이 ‘봉신지’이며 1914년에 필사되었다.

내용

『서주연의』는 천상 옥허(玉虛) 부명(符命)을 받은 강자아(姜子牙)가 여러 신선들의 도움을 받아 36차례의 큰 난관을 이겨 내고 무왕을 도와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우는 일련의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상나라 주왕은 여와묘(女媧廟)에 들어가 참배를 드리다가 불경(不敬)한 시를 지어 여와를 희롱한다. 여와는 대로하여 세 요괴를 시켜 주왕을 유혹하고 상나라를 멸망시키려 한다. 그 중 한 여우 정령이 달기(妲己)로 변신하여 주왕의 총애를 받는다. 달기는 충신들을 불로 달구고 황후와 태자들까지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제후들을 서울로 불러들이고 서백 희창(姬昌)을 옥에 가둔다. 그때, 이정(李靖)의 아들 나타(哪吒)가 바다에서 소동을 피워 용왕의 아들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모친이 사당을 세우지만 이정이 부숴 버린다. 나타는 사부에게 간청하여 연꽃으로 변신하여 이정을 죽이려다 오히려 제압당한다.

곤륜산에서 40여 년간 수행한 강자아는 하산하여 88살의 나이로 아내를 맞는다. 점치는 일을 하다가 비파(琵琶) 정령을 죽이고 대부(大夫)가 된다. 그러나 주왕이 명령한 녹대(鹿臺) 짓는 일을 반대하다 미움을 사게 되어 서주(西周)로 도망간다. 한편, 감옥에서 풀려난 희창은 강자아를 찾아간다. 주왕이 황비호(黃飛虎)의 부인을 희롱하자, 황비호도 주나라로 귀순한다. 절교(截敎)의 통천교주(通天敎主)는 상나라를 돕고 천교(闡敎)는 주나라를 돕는다. 강자아가 군사를 거느리고 상나라를 치자, 천교와 절교 두 교주는 주선진(誅仙陣), 만선진(萬仙陣)에서 대전을 벌이고 절교는 패한다. 황음무도를 일삼던 주왕은 적성루에서 분신자살하고, 달기는 처형당한다. 무왕은 72제후를 분봉(分封)하고 강자아를 제후에 봉한다.

의의와 평가

『서주연의』는 『서유기(西遊記)』와 함께 대표적인 신마소설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무왕이 주를 벌했다는 역사 사실을 주요 골자로 삼고, 당시 민간의 전설을 널리 채록하여 소설화한 것이다. 『봉신연의』라는 원전의 서명을 한글필사본에서는 『서주연의』라고 쓰고 있는데, 번역자가 최종적으로 무왕이 서주(西周)를 건국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 명명한 듯하다.

우리나라에는 17세기부터 ‘서주연의’란 이름으로 번역되어 읽혔을 정도로 상당한 애호를 받았던 소설이다. 이 점은 조태억(趙泰億, 1660∼1722)의 『겸재집(謙齋集)』 「언서서주연의발(諺書西周演義拔)」에 잘 드러나 있다. 당시 사대부가 여인들의 소설 독서 풍토를 보여 주는 부분으로, 17세기에 이미 사대부 가문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번역소설을 포함한 한글 소설이 상당히 활발하게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서주연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국 고소설 연구』(오오타니 모리시게(大谷森繁), 경인문화사, 2010)
『서주연의』(장경남·이재홍·손지봉, 학고방, 2003)
「낙선재본 『서주연의』 연구」(이홍란, 숭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조선시대 중국 통속소설 번역본의 연구」(박재연,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집필자
김영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