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필사본. 필사자 미상. 낙선재본으로 장서각에 5권 5책이 있다. 명나라 때의 소설 『손방연의』(20회)를 번역한 책이다. 『손방투지연의(孫龐鬪志演義)』, 『전칠국손방연의(前七國孫龐演義)』라고도 한다. 이밖에 1918년 회동서관에서 출판한 구활자본 『손방연의』(11회)가 있는데, 중국 원전과 비교할 때 서사 전개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구활자본 『손방연의』는 당시 민간에서 나돌던 필사본을 토대로 축약 번안한 듯하다.
낙선재본은 매권 본문 시작 전 내지에 4회씩 회목이 적혀 있다. 또한 매권 본문 첫 면에는 ‘영빈방인(暎嬪房印)’이라는 장서인이 찍혀 있다. 영빈 이씨(1696∼1764)는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이다.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필사 시기는 1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영빈방인’이라는 장서인이 찍힌 번역소설 필사본으로 『무목왕정충록((武穆王貞忠錄))』이 있다. 이 밖에 온양 정씨(1725∼1799)가 필사한 『옥원재합기연(玉鴛再合奇緣)』의 표지 이면에도 ‘손방연의’ 서명이 보이고 있어 18세기에 사대부가의 여성층에서도 향유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손방연의』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부마 손조(孫操)에게는 손룡(孫龍), 손호(孫虎), 손빈(孫臏) 세 아들이 있었다. 손조가 진(秦)나라를 정벌하러 나갔다 패하여 돌아오자, 손빈은 병법을 배우기 위해 운몽산(雲夢山) 귀곡선사(鬼谷仙師)를 찾아 떠난다. 이때, 위나라 사람 방연(龐涓) 역시 귀곡선생을 찾아간다. 두 사람은 노중에 만나 결의형제를 맺고 귀곡선사 밑에서 동문수학한다.
방연이 먼저 하산하여 공을 세우고 위나라의 부마가 된다. 그는 손빈을 위나라로 오게 하여 수하에 둘 목적이었으나 진법(陣法) 겨루기에서 패배하자 손빈을 모함하여 투옥시킨다. 방연은 천서(天書)를 얻기 위해 손빈의 형을 사형에서 발가락을 자르는 월족형(刖足刑)으로 감형시킨다. 손빈은 천서를 태우고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제(齊)나라로 도망가서 공을 세우고 높은 관직에 오른다. 방연은 이웃 여러 나라를 수차례 침략하나 그때마다 손빈에게 패한다.
어느 날, 손빈은 전투에서 3년 동안 불리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죽은 체한다. 방연이 이를 진짜로 믿고 한(韓)나라를 토벌한다. 한나라의 군신들이 손빈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제왕에게 한나라를 구해 줄 것을 요청한다. 손빈은 황백양(黃伯陽)이라 칭하면서 군사를 이끌고 나가 한나라를 구한다. 손빈은 대패한 것처럼 오인하게 하여 방연을 마릉(馬陵)으로 유인한다. 그리고 그곳의 버드나무 아래에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다’라는 글자를 써 놓는다. 방연은 이를 보고 함정임을 깨닫지만 손빈의 군사에게 잡히고 만다. 7국의 왕들은 옛 맹세를 실천하여 방연을 참수한다. 손빈은 관직을 물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손방연의』는 진(秦)·초(楚)·연(燕)·한(韓)·조(趙)·위(魏)·제(齊) 일곱 나라가 세력 다툼을 벌이는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손빈과 방연이 전략을 겨루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사기』 등의 역사서에 나오는 사실을 토대로 하면서도 신괴(神怪), 영괴(靈怪)적인 내용들을 포함하여 사실과 다른 허무맹랑한 부분들이 있어 신마소설(神魔小說)에 속한다.
낙선재본이 현존하는 유일한 번역필사본이다. 중국소설의 번역본은 대부분 시사(詩詞) 등을 생략하고 내용을 축약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손방연의』는 중국어 원전을 거의 대부분 충실하게 번역한 점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