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필사본. 필사자 미상. 명말∼청초의 재자가인소설 『옥교리』(4권 20회)를 번역한 책이다. 『쌍미기연(雙美奇緣)』이라고도 한다. 『옥교리』는 현종(1659∼1674)의 한글편지, 완산 이씨(完山李氏)의 『중국소설회모본(中國小說繪模本)』(1762) 등에 서목이 보이는 점으로 미루어, 17세기부터 궁중에서 읽히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옥교리』는 18세기 초에 일본에 전해져 19세기 말까지 한국어 학습을 위한 교재로 활용된 사실이 확인된다.
『옥교리』 번역본은 도쿄대학 소장본과 고려대학교 만송문고 소장 2종이 전한다. 도쿄대학 소장 『옥교리』는 3권 3책, 20회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에 충실하게 번역하였으며 여타 번역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사건 전개에 요긴하지 않은 부분은 생략, 축약하였다. 아울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부연하거나 본문 아래에 세주를 달아 설명하였다. 고려대학교 만송문고에 소장된 『옥교리전』은 상권이 유실되고 하권 1책만 전한다. 세책방에서 나돌던 것으로 추정되며 번역은 의역과 생략이 많은 편이다.
『옥교리』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명나라 영종(英宗) 연간, 태상정경(太常正卿) 백현(白玄)의 외동딸 백홍옥(白紅玉)은 인물이 빼어나고 시재(詩才)가 뛰어났다. 어사(御使) 양정조(楊廷詔)가 홍옥을 며느리로 들이고자 하지만, 백현이 거절한다. 양어사는 이에 앙심을 품고, 백현을 사신으로 추천하여 부녀는 헤어지게 된다. 백현은 외동딸을 처남인 오규(吳硅)에게 맡긴다. 오규는 홍옥을 자기 둘째딸인 것처럼 꾸미고 이름을 무교(無嬌)로 바꾸는데, 우연히 수재(秀才) 소우백(蘇友白)을 보고 홍옥의 배필로 삼고자 한다. 그런데 우백은 우연히 홍옥의 시비(侍婢)를 홍옥으로 잘못 알고는 혼사를 거절한다. 이에 오규는 분한 마음에 친구에게 청탁하여 우백을 유적(儒籍)에서 뺀다.
한편, 백현은 무사히 돌아온다. 우백은 우연히 절에서 홍옥이 지은 〈신류시(新柳詩)〉에 걸맞은 화답시를 짓는 이를 사위로 맞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를 지어 보낸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간계로 우백의 시를 베낀 장궤여(張軌如)가 백현 조카의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궤여는 우백의 도움을 받아 시를 짓고, 결국 우백은 홍옥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우연히 홍옥을 보고 사모하는 마음이 깊어진다.
홍옥의 제안으로 오규를 찾아 서울로 가던 우백은 벗 소유덕(蘇有德)을 만나고, 유덕은 우백 행세를 하며 홍옥과 결혼하려고 한다. 우백은 상경하는 도중 도적을 만나 행장을 빼앗기고 그곳에서 남장한 노몽리(盧夢梨)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 이후 우백은 숙부의 양자로 들어가 과거에 응시하여 절강의 추관(推官)이 된다. 몽리는 홍옥의 고종사촌으로 어머니와 함께 화를 피해 외삼촌 백현의 집에 머물고, 몽리와 홍옥은 한 남자와 결혼하자고 약속한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우백은 백홍옥, 노몽리와 혼인한다.
『옥교리』는 재자 소우백과 가인 백홍옥, 노몽리가 우여곡절 끝에 부부의 연을 맺는 이야기이다. ‘옥교리(玉嬌梨)’라는 명칭은 여자 주인공 백홍옥과 그녀의 화명인 무교, 노몽리의 마지막 글자들을 따서 만든 것이다. 재자가인소설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인 17세기에 조선에 전래되어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한 작품이다.
18세기 초부터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오랜 동안 일본인들이 한국어 학습을 위해 관심을 가졌던 소설로, 일본으로의 유입 기록도 많이 남아 있어 특기할 만하다. 도쿄대학 소장 『옥교리』는 현존하는 유일한 완질의 한글필사본이다. 한자 병기, 본문 및 상단의 주석, 순한글 어휘나 어미에 대한 주석 및 일본어 주석이 일본인을 위한 한국어 독본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도록, -뇨, -료, -랴, -료, -리오, -와, -롸, -랏다, -닷다, -도다, -돠, -로다’ 등 다양한 어미의 활용상을 정확하게 풀어내고 있다. 한문 병기 역시 한문본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를 통해 , 『옥교리』를 편집한 일본인이 상당 수준의 한문 및 중국어 실력도 겸비한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에서 번역되어 읽히고 그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어 학습에 이용되던, 당시 동아시아의 어문 교류 현장을 잘 보여 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