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복설화는 다른 사람의 복을 임시로 빌려서 잘살다가 그 복을 돌려준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차복설화는 주인공이 초월계에서 빌린 남의 복을 되돌려 주느냐 공유하여 함께 잘사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변이가 생기기도 한다. 현실적인 가난에 초월적인 존재가 개입하여 운명을 바꾸지만 반드시 받은 복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점이 설화의 핵심이다. 차복설화는 이승의 현실적인 삶과 현실을 결정하는 신이한 초월계가 별도로 존재하고, 초월적 존재로 인해 운명이 바뀐다는 점에서 운명론적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
차복 설화는 남의 복을 빌린다는 뜻과 차복이라는 인물이 복을 빌린다는 뜻이 함께 작용하여 ‘차복’이라는 이름이 명시되는 것이 특징이다.
전형적인 각편으로 〈나무꾼 차복이〉가 있다. 나무꾼은 하루 두 동의 나무를 하며 빠듯하게 살면서 가난을 면치 못하였다. 나무가 자꾸 없어져서 숨어서 지켜보다가 바람이 불어 나뭇동이 하늘로 올라가자 숨어 있던 나무꾼도 같이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옥황상제를 만나, 자신이 하루에 나무 두 동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사정을 말하자 차복이의 복을 가지라고 하였다. 나무꾼은 차복이의 복을 넘겨받아 잘살게 되었다. 하루는 옹기장수 내외가 와서 하룻밤을 자자고 하여 마차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 곳에서 옹기장수의 아내가 출산을 하여 아이의 이름을 차복이라고 지었다. 나무꾼은 해산을 한 여인에게 한 집에서 살기를 제안하였고 그들은 재산을 반분하여 함께 잘살게 되었다는 결말이다.
이 각편은 주인공이 초월계에서 빌린 남의 복을 되돌려 주는가 아닌가 여부와, 결말에서 남의 복을 되돌려 주는가 아니면 공유하여 함께 잘사는가 여부에 따라 여러 가지 변이가 생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가난에 초월적인 인물이 개입하고 그 인물의 주선으로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지만 반드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을 이룬다. 이승의 현실적인 삶과 현실을 결정하는 신이한 초월계가 별도로 존재하고 운명이 초월적인 인물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운명론적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
차복설화는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거의 같은 형태로 공유되고 있어 비교설화학적 관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가령 『수신기(搜神記)』의 장차자의 설화가 유사한 사례이다.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남책이 가난했으나 도를 좋아했다. 주남책 부부가 밭일을 하다가 피곤하여 쉬려고 누웠는데 꿈에 하느님(천공)이 지나가다가 불쌍히 여기고 바깥의 관리에게 명하여 녹을 주도록 하였다. 사명신이 장부를 살펴보고 이 사람의 관상은 가난하도록 되어 있어서 한도를 넘길 수 없으니 장차자의 돈을 빌려서 녹봉을 천만 주도록 하시라고 하였다. 차자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이를 빌려 주라고 하자 천공이 좋다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부부는 꿈속에서의 일을 말하고 죽을 힘을 다해서 일하여 천만 전을 얻게 되었다. 한편, 장구라는 인물이 일찍이 주남책의 집에서 고공살이를 하였는데 다른 남자와 야합해서 임신을 하고 달이 차서 낳을 때가 되었다. 주남책이 이를 알아채고 밖으로 내보내 수레창고 아래에서 아이를 낳게 되었다. 주남책이 이를 불쌍히 여겨 죽을 쑤어서 먹게 하고는 아이의 이름을 뭐라고 지을지 물었다. 장구가 꿈에서 천공이 이름을 차자라 하였다고 하였다. 주남책이 깨달은 바가 있어, 내가 예전에 꿈에 천공으로부터 장차자의 돈을 빌렸는데 장차자가 바로 이 아들일 것이니 재물을 마땅히 네게 돌려주겠다고 하였다. 이후 장차자는 자라서 주남책보다 부유하였다고 한다.
현실과 초월의 세계가 존재하고 인간의 운명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하는 설정은 전형적인 중세의 종교적·주술적 세계관에 입각한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시대의 보편적 사고가 초월적인 직분을 지닌 인물의 기능이나 인간이 모르는 운명이 따로 있다고 하는 생각을 낳으면서 발생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