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왕(재위 927∼935)은 짐부대왕, 금부대왕 등으로 지역마다 달리 불리기도 하지만 전국적으로 김부대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기도 도당굿 부정굿 무가 치국잡기 가운데 “첫번 치국을 잡으시니는 금부대왕 치국이요.” 하는 내용을 통해, 왕의 내력이 오래되었고 경상도 경주라는 특정 지역을 통치한 인물로 무속에서 섬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설화에서도 거의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김부대왕에 관한 문헌 기록은 이규경(李圭景, 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 〈김부대왕변증설(金傅大王辨證說)〉이 대표적이다. 이 변증에서는 강원도 인제 지역에서 김부대왕을 모셔 제사지낸 흔적이 있음을 지적하고,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김부대왕동(金傅大王洞)에 관한 지명 전설이 정리되어 있다. 김부대왕에 대한 이야기가 구전되면서 사실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김부대왕 설화의 핵심 화소와 주제는 몇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 유형은, 김부대왕이 호국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신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호국룡의 존재는 평범하지만 순진무구한 눈을 가진 아이가 뱀이 아니라 용이라고 하는 사실을 지적할 때에 비로소 호국룡으로 좌정하거나 행위를 한다는 점이 요체이다. 왜구를 물리치거나 잦은 물난리, 홍수를 겪는 지역을 정리하는 생식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이 유형의 요점이다. 이 유형에는 여러 가지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복합되어 있다. 문무대왕의 수중릉이나 이견대(利見臺)와 같은 호국룡의 전승과 겹치기도 하고, 용의 승천담과 겹치기도 하고, 호국룡을 알아보며 새로운 들의 유래로 ‘유금이들’ 생성에 의한 지명 전설과도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문헌 설화와 구전 설화가 서로 맞물려 있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두 번째는 특정한 고장에서 성황신으로 좌정하면서 마을이나 고을을 지키는 신격 노릇을 하는 유형이다. 당신화, 성황 신화와 관련되고 성황사의 유래를 해명하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긴요한 내용을 갈무리하고 있다. 그러한 유형의 사례가 대체적으로 전국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경기도 시흥시와 안산시에 전승되는 군자봉 성황제와 잿머리 성황제가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으며, 인근의 화성시 우음도 도당굿, 경기도 수원시 평동 도당굿 등의 주신으로 섬겨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신화의 핵심은 고려의 서희라고 하는 특정한 역사적 인물과 점철된다. 그의 꿈에 김부대왕이나 그의 아내로 형상화된 안씨나 홍씨마마 등이 등장하여 김부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일이 벌어진다. 이는 당신으로 좌정하는 면모를 구체적으로 증거하는 사례이다. 충청남도 보령에서도 김씨라는 인물이 꿈을 꾸니 황룡포를 입은 노인이 자신을 건지라고 하는 말을 듣고 바다에 가서 “호서옥마산김부대왕지기(湖西玉馬山金傅大王之旗)”와 “경순대왕김부신주(敬順大王金傅神主)”라고 쓰인 깃발과 위패를 모시고 와서 집에서 섬겼더니 마침내 집안이 풍요로워졌다는 내용이 전한다. 강원도 인제군에서도 김부대왕을 제사하는 장소가 있으며 기원을 하는 사례를 널리 확인하게 된다.
세 번째는 김부대왕을 마애미륵불이나 지명 전설과 연결짓는 유형이다. 그러한 사실은 이규경이 김부대왕의 사례를 변증하는 과정에서 폭넓게 소개한 것을 볼 수가 있으며, 전국적으로 유사한 지명 전설이 확인된다. 특정한 인물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그 인물의 실패를 새롭게 도래할 전조나 가능성으로 인식하는 것이 이 전설의 요점이다.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그 비극의 역전 가능성을 강력하게 희망하는 민중들의 의식이 반영되면서 이와 같은 미륵신앙이나 지명 유래담으로 전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김부대왕의 신앙적 면모가 성황 신화나 당신 신화로 전환되고 이야기의 본질이 특정한 개인이나 역사적 인물의 꿈으로 꾸어져서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것은 김부대왕의 신앙적 확대와 지역적 정착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부대왕이 전국의 지명과 연결되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김부대왕이 역사적 패배자라고 하는 데 있으며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무속에서 원한을 가진 인물이 신격으로 숭배되고 역사적인 비극을 반추하고 반복하면서 생식력이나 주술적인 가능성을 확대해 주는 인물로 전환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단종, 최영, 새별상 등의 전례를 통해서 이러한 무속적 신앙의 확장 과정을 넓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신앙의 흔적 속에서 김부대왕이 살아 있는 신화의 주인공으로 거듭 확대되고 기억되는 과정에서 민중적인 역사 인식이 더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