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정집(栗亭集)』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 권106 「윤택열전」과 『용재총화』 권8, 『대동운부군옥』의 「찬집서적목록(纂輯書籍目錄)」, 『해동문헌총록』의 「제가시문집(諸家詩文集)」 등에 보인다. 이색(李穡, 1328∼1396)이 쓴 「율정선생일고서(栗亭先生逸藁序)」(『목은문고(牧隱文藁)』 권8)는 그 서문이다. 이에 따르면, 집에 화재가 나서 문서를 모두 잃어버렸는데, 손자 윤소종(尹紹宗, 1345∼1393)이 수습하여 일고(逸藁)를 편찬하였다고 한다. 『율정집』은 현전하지 않아 서지와 내용을 알 수가 없다. 윤택의 시는 『동문선』에 4수가 뽑혀 있으며, 「종의릉연행원(從毅陵宴杏園)」이 유명하다.
윤택은 본관이 무송(茂松: 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이고, 자가 중덕(仲德), 호가 율정이다. 충숙왕 때 급제하고 공민왕에게 발탁되어 건의한 것이 많았다. 일찍이 북송 학자 범중엄(范仲淹, 989~1052)의 「악양루기(岳陽樓記)」 중의 ‘근심을 먼저 하고 즐거움을 뒤로 한다(先憂後樂之言)’는 구절을 애송하였으며, 찬성사(贊成事)로 있다가 치사(致仕: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하고 금주(錦州: 충남 금산)로 돌아가서 산수 간에 노닐며 즐겼다. 공민왕이 손수 초상화를 그리고, ‘율정(栗亭)’ 두 글자를 큰 글씨로 써서 하사한 바 있다.
서지와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부전(不傳) 문집이라 그 의의를 구체적으로 논할 수 없으며, 다만 산견된 기록을 종합하여 문집의 존재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