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문종 연간에, 사신으로 송나라에 간 문인들이 지은 시를 수록한 시문집.
내용
1071년(문종 25)에 김제(金悌), 박인량(朴寅亮, ?~1096), 배모(裵某), 이강손(李絳孫), 노유(盧柳), 김화진(金化珍) 등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도중에 70여 편을 창화(唱和)하여 『서상잡영(西上雜詠)』이라 이름을 붙이고 이강손이 서문을 지은 바 있다(『해동역사』 권43 예문지(藝文志) 2 「경적(經籍)」). 그리고 1081년(문종 35)에 최사제(崔思齊, ?~1091), 이자위(李子威), 고호(高琥), 강수평(康壽平), 이수(李穗) 등이 조공을 바치러 송에 갔는데, 정월 보름에 동궁에서 잔치를 할 때 신종(神宗)이 어제시(御製詩)를 관반(館伴)인 필중행(畢仲行)에게 내리자, 필중행과 이들 5인이 화답시(和答詩)를 지어 올렸다고 한다. 『문헌통고』에는 이 2건의 고려 사신들의 저작을 통칭하여 ‘고려시’라는 항목으로 수록한 것으로 파악할 수가 있다. 곧 『해동문헌총록』 소재 『고려시』의 주석에 이강손이 서문을 썼다는 기술은, 이강손이 김제, 박인량 등과 함께 사신으로 간 것을 감안할 때 『서상잡영』의 서문으로 이해된다.
한편 박인량이 1080년(문종 34)에 유홍(柳洪, ?~1091)과 함께 송에 사신으로 갔을 때 송나라 사람들이 박인량과 김근(金覲)의 척독(尺牘), 표장(表章), 제영(題詠)을 보고 칭찬하여 『소화집(小華集)』을 간행해 준 바 있다(『고려사』 권95 「박인량열전」). 박인량의 「사송과사주귀산사(使宋過泗州龜山寺)」(『동문선』 권12)와 최사제의 「입송선상기경중제우(入宋船上寄京中諸友)」(『동문선』 권19)가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며 지은 시들이다. 『서상잡영』과 『소화집』이 현전하지는 않으나, 고려 전기 송나라와의 문인교류 및 문학 수준의 일면을 짐작할 수가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동문선(東文選)』
- 『보한집(補閑集)』
-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
- 『해동역사(海東繹史)』
- 「『해동문헌총록』 소재 고려 문집 연구─부전(不傳) 문집을 중심으로」(김건곤, 『장서각』 18,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 「고려 초기의 문풍과 해외교류」(이혜순, 『이화어문논총』 10집, 이화여대 한국어문학연구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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