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정집(萱庭集)』에 관한 기록은 『용재총화』 권8, 『해동문헌총록』의 「제가시문집(諸家詩文集)」 등에 보인다. 『용재총화』에는 『훤정집』이 한 질(秩)이라 하였으나, 현전하지 않아 서지사항과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그의 시문 또한 전하는 작품이 없다. 『삼봉집』 권2의 「차민망운송박생(次民望韻送朴生)」이라는 시로 미루어 정도전(鄭道傳, 1342~1398)과도 교유한 것으로 보인다.
염정수는 본관이 파주(坡州)이고, 자가 민망(民望), 호가 훤정이다.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 1304∼1382)의 아들이자, 염흥방(廉興邦, ?1388)의 동생이다. 그는 『고려사』에 입전(立傳)되어 있지 않다. 이색(李穡, 1328∼1396)이 그의 요청에 따라 사는 집 훤정(萱庭)의 뜻을 풀이하고 학문을 칭찬하여 「훤정기(萱庭記)」(『목은문고(牧隱文藁)』 권2)를 써 주었다. 이색은 「훤정기」에서 근심을 잊고 답답함을 풀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부모에게 순종하고 천지에 통할 것을 권면하였다. 그는 이색의 문생(門生)이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우왕 때에 지신사(知申事)가 되었으며, 정몽주(鄭夢周, 13371392), 이숭인(李崇仁, 13471392), 하륜(河崙, 13471416), 강회백(姜淮伯, 13571402) 등과 함께 백관(百官)의 관복을 제정하였다. 뒷날 최영(崔瑩, 13161388)과 이성계(李成桂, 1335~1408)에 의해 간신 임견미(林堅味, ?~1388) 등이 제거될 때 그의 형 염흥방과 함께 주살되었다.
서지와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부전(不傳) 문집이라 그 의의를 구체적으로 논할 수 없으며, 다만 산견된 기록을 종합하여 문집의 존재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