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음보 1행의 가사체를 기준으로 103행이고, 서사(19행)·본사(80행)·결사(4행) 3단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윤학민(1857∼1939)이 필사한 52장본과 윤석주(1883∼1953)가 필사한 52장본이 1989년까지 전해져 왔으나 이후 행방을 알 수 없다. 현재는 『기수가(淇水歌)』(육화회, 해교인쇄사, 1989)라는 이름으로 발행한 책자에 영인되어 있다.
1867년 영사재(永思齋)에서 연회를 마친 후 하당댁이 〈기수가〉를 창작하자 하당댁의 친올케인 서흥 김씨가 답가로 지은 것이다. 〈답기수가〉의 필사본에는 ‘들어오신 부여소ᄌᆞᆨ’이라고 되어 있지만 작품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하당댁의 친올케이며 환훤당 김굉필(1454∼1504)의 후예인 서흥 김씨가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답기수가〉에서 서흥 김씨는 시누이의 의견과는 상반된 견해를 드러내었다. 서사(19행)인 제1단락(어와 제종 시매들아∼놀대로 놀아보세)에서는 시누이들이 친정에 와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부러워하면서 올케들도 친정을 방문한 연후에 연회석을 마련하여 재미있게 놀자고 하고 있다. 본사(80행)의 처음 단락인 제2단락(가소 강남 이분네야∼좋은 듯이 따라가네)에서는 시누이의 양반자랑과 올케 친정에 대한 조롱을 차례로 반박하고 시누이와의 관계를 잘 맺고자 연회석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제3단락(상좌에 앉히고서∼인정도 고맙도다)에서는 시누이의 시댁을 비판하며 시누이의 양반자랑을 조롱하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결사(4행)인 마지막 단락(우리들 분망 중에∼괄목상대 원이로세)에서는 시누이가 이 가사를 읽고 변하는 삶을 살아 괄목상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 가사에서는 〈기수가〉의 작가가 올케들을 조롱한 내용을 문제 삼아, 시누이들이 친정에 와서 행하는 행실에 대한 감정 섞인 인물평, 시누이들의 시댁 가문 희롱, 그리고 지나친 소비를 나무라며 반박하고 있다.
19세기 말에 토론과 논쟁의 형식을 규방가사의 글쓰기로 표출한 것으로, 조선 후기 여성들의 문중의 삶을 관찰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