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가는 이별(李鼈)의 「장육당육가(藏六堂六歌)」를 비롯하여 이황이 지은 「도산육곡(陶山六曲)」 2편이 있고, 이후에는 이별의 「장육당육가」의 전통을 이어간 경우와 이황의 「도산육곡」의 전통을 이어간 경우로 나뉜다. 이별의 육가 전통은 주로 그 후손들이 이어갔는데, 이정의 「풍계육가」, 이득윤의 「서계육가」와 「옥화육가」, 이홍유의 「산민육가」 등이 있고, 이황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는 장경세의 「강호연군가」, 안서우의 「유원십이곡」, 권구의 「병산육곡」 등이 있다.
육가는 크게 한시(漢詩) 계열의 노래와 우리말 노래인 연시조로 가를 수 있다. 한시 계열의 육가는 송나라 문천상(1236∼1282)의 「육가」에서 비롯되며, 이는 다시 두보의 「동곡칠가」에서 연유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시습(1435∼1493)의 「동봉육가」가 있다. 이들 한시 계열의 육가에서는 어려운 상황을 맞아 비극적인 분위기와 위축된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고 있다.
이별이 6수의 연시조로 「장육당육가」를 지으면서 육가는 6수를 단위로 하는 연시조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육(六)이 지닌 가의가 숨어서 내면을 드러낸다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에 숨어서 세상을 향한 태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6수를 단위로 12수, 18수 등으로 확장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육가의 내용은 자연에 숨어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풍자나 비판이 포함된 것으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이황이 「도산십이곡발」에서 이별의 「장육당육가」를 ‘완세불공’이라고 비판하고 스스로 「도산육곡」을 2편 지으면서 온유돈후(溫柔敦厚)를 지향하는 것으로 전환하면서 그 성격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른바 지평선의 변환이 일어나게 된 것인데, 그 이후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육가와 이황의 전환을 지향하는 육가 등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작품이 지어졌다.
숨어서 사는 화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육가는 이별의 「장육당육가」에서 연시조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연시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면서 시조사에서 우수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육가는 세상을 향한 화자의 내면 표출 방식에 따라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성격을 드러낸 작품과 내면적인 온축을 강조하는 작품으로 나뉘어 18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향유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