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학교 선사문화연구소가 1995~1996년에 발굴하였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5기를 비롯하여 삼국시대의 백제 토기가마 1기, 토광묘 1기, 그리고 신라 수혈유구 5기 등이 있다. 이 밖에 조선시대 회곽묘 2기와 구석기시대 석기 및 제4기 고토양층의 존재도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Ⅲ지구에 위치하는데 해발 24m의 낮은 구릉에 장방형 주거지 5기가 분포한다. 주거지 내부의 화덕자리는 바닥면을 그대로 활용한 형태이며, 4호와 5호 주거지에는 저장공이 있다. 토기는 구순각목문과 공렬문이 대부분이며, 이중구연단사선문과 거치문이 시문된 토기도 일부 보인다. 연대는 5기의 주거지에서 나온 목탄시료를 방사성탄소연대로 측정한 결과, 1호는 서기전 1,110800년으로, 2호는 서기전 1,640-1,270년으로, 3호는 서기전 1,300900년으로, 4호는 서기전 1,390950년으로, 5호는 서기전 900470년으로 나왔다. 유적의 보고자는 가장 이른 연대와 늦은 연대를 제외하면 서기전 12세기에서 10세기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보았다.
삼국시대 유구는 Ⅲ지구에서 백제 토기가마 1기와 Ⅳ지구에서 백제 움무덤 1기가 조사되었다. 움무덤에서는 5세기로 편년되는 광구장경호(廣口長頸壺), 직구단경호(直口短頸壺), 철낫, 철자귀, 철집게, 철도자(鐵刀子) 등이 나왔다. 그리고 신라토기가 나온 수혈유구는 점렬문(點列文)이나 중원문(重圓文), 수적문(水滴文)의 양식적인 측면에서 7세기대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한편, 조선시대 회곽묘에서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청동기시대 4호 주거지에서는 이중구연 단사선문토기와 공렬토기가 함께 나왔으므로 흔암리유형에 해당하는데, 경기 남부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양상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자료이다. 백제 토광묘와 신라 수혈유구는 평택지역을 둘러싼 정치체의 변화 양상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