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에서 화성 남양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84호선 가운데 ‘화성 본오-오목천 간 도로 확포장공사’구간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2002년 한신대학교박물관이 발굴하였다. 천천리유적은 해발 85m 구릉의 남사면에 해당하며, 청동기시대 주거지 12기와 적석유구(積石遺構) 1기가 확인되었다. 이와 동시에 한성기 백제의 주거지와 옹관묘 각 1기, 통일신라시대 석곽묘 1기, 조선시대 주거지 1기 등 다양한 시대의 유구가 조사된 복합유적이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전기에 해당하는 세장방형과 장방형 주거지 10기와 중기의 타원형 주거지 2기가 발굴되었다. 전기 주거지 가운데 7호 주거지는 길이 29.1m, 너비 4m, 면적이 116.4㎡에 달하는 초대형 주거지로서,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가장 긴 수혈 주거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 주거지에서는 토기 195점, 옥을 포함한 석기 75점 등이 출토되어 유물 수량 역시 최대급이다. 주거지의 내부시설로는 불먹은 흔적만 남은 화덕 11기와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구덩이 9기를 갖추고 있으며, 기둥구멍이 벽선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또한 유물 가운데 비교적 고가(高價)의 장신구인 소환옥(小環玉)이나 권위를 상징하는 성형석부(星形石斧)도 확인되었다. 결국 7호 주거지는 규모나 출토유물로 볼 때, 마을을 이끄는 지도자와 그에 딸린 많은 성원들이 함께 살았던 대형의 가옥으로 추정된다.
천천리유적에서 나온 토기의 문양은 공렬문(孔列文)과 구순각목문(口脣刻目文)이 주류를 이루며 x자문도 보이는데, 무문토기 가운데 1호 주거지에서 나온 부가구연호(附加口緣壺)는 상당히 이례적인 형태이다. 적색마연토기 가운데에는 대부소호(臺附小壺)도 있으며, 이와 함께 2호 주거지에서 확인된 대각에 구멍을 네 방향에서 뚫은 유공대부발(有孔臺附鉢)이 특징적이다. 석기는 이단병식(二段柄式) 및 일단병식(一段柄式) 석검을 비롯하여 주형(舟形) 및 어형(魚形)의 반월형석도, 여러 종류의 석촉, 석부가 나왔다. 이 가운데 일단병식석검과 유구석부(有溝石斧)는 청동기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을 통해서 확인된 유적의 절대연대는 전기의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 주거지는 서기전 1210세기(1시그마, 68%)로 나왔으며, 중기의 타원형 주거지는 서기전 86세기(1시그마, 68%)로 측정되었다.
천천리유적에서 청동기시대 중기의 송국리식주거지가 2기 확인된 것은 중요하다. 이 유적이 조사되기 전까지 서울,경기지역에는 청동기시대 중기문화를 대표하는 송국리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으나, 최초로 2기의 송국리식주거지가 확인됨으로써 새로운 학문적 논의가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