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송정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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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에 있는 삼국시대 돌방무덤 ·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목차
정의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에 있는 삼국시대 돌방무덤 ·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내용

장흥송정리유적은 산사면과 탐진강의 경계지점에 해당하는 충적지에 형성되었다. 행정구역은 전남 장흥군 유치면 송정리 갈두마을 일대로서, 유치초등학교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송정고분군은 전체 10기가 조사되었는데, 9기는 석실이며 1기는 석곽이다. 석실의 규모는 장축 250cm내외, 단축 100-200cm 정도이다. 파악이 가능한 석실의 평균 면적은 4,36㎡로 비교적 소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석실의 평면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이며,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는 남-북 방향이 대부분이다. 전남지방에서 확인되는 석실의 경우 대부분 연도는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도가 한쪽에 치우쳐 편재하는 유적은 송정고분군이 조사된 장흥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추가장이나 다장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시상대가 분리되는 양상으로 볼 때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분의 주구나 외부시설인 주구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제의적인 양상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유물은 총 39점이며, 토기류가 다수를 차지한다. 철기의 부장은 전무하나 관못이 8호에서 일부 확인되었으며, 이외에 금동제귀걸이가 7점 출토되었다. 철제 관못이 출토됨은 석실내에 시상대를 마련하고 시신을 별도의 관에 매장했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유물이 출토되는 위치는 입구부로 추정되는 남쪽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중 귀걸이의 출토 위치도 남쪽 단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어 침향이 석실의 입구부인 남쪽일 가능성이 높다.

송정고분군에서 유물 개체수보다는 점유율에서 특징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개배와 고배의 경우 1개의 유구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반면, 병형토기, 호형토기, 귀걸이의 경우는 대체로 각각의 유구에서 고르게 출토된다. 유물 중에는 병형토기와 삼족토기, 금동제 귀걸이 등은 특징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병형토기는 백제시대 전 기간에 걸쳐 한강과 금강유역의 도성 및 그 주변지역에서 모두 확인되고 있으며, 영산강유역에서는 6세기 이후에 등장하는 표식적인 유물로 알려져 있다. 병형토기는 장경병, 단경병, 횡병 등 다양한 형태로 구분되는데, 송정고분군 출토품은 모두 목이 짧은 단경병에 해당한다. 삼족토기는 5호분에서 개배와 셋트로 3점이 출토되었다. 삼족토기의 경우, 그동안 확인되지 않은 기형으로 파악되는데 이들 유물은 대체로 6세기 이후에 출토되는 것이다. 금동제 귀걸이는 청동에 금박을 입힌 후 구부려서 마무리한 것이다. 그러나 각각 쌍으로 출토되지 않고 1개 혹은 3개인 홀수로 출토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유물은 백제와 관련이 깊은 전형적인 예로서, 송정고분군의 특징 및 편년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고분은 백제권에서 확인되는 웅진 2식의 횡혈식 석실분과 구조적으로 동일한 특징을 보이고 있어 고분의 축조연대는 6세기 중후엽을 중심연대로 비정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전남지방 특히, 영산강유역에서 확인되는 석실고분은 대체적으로 토착적인 요소와 백제나 왜의 외부적인 요소와 상당부분 결합되는 양상을 보인다. 탐진강유역의 장흥송정고분군은 백제적인 특징을 상당부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군산 여방리 고분군의 횡혈식석실과 유사한 양상이다. 연도부가 잘 남아 있지 않지만, 연도부가 한 곳에 편재한 양상은 장흥지역 고분의 하나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장흥지역에서 석실이 조사되었다는 점은 6세기 이후 이 지역에 대한 백제의 진출과정과 묘제의 축조 의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기원후 500년을 전후한 시점에 영산강유역에서는 광범위하게 외래적인 특징을 갖는 수혈식 석곽의 등장, 전방후원형고분의 축조 등 급변하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 6세기 중엽 이후에는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장흥송정고분군은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장흥 송정 고분군』(호남문화재연구원·한국수자원공사, 2006)
집필자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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