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충청북도 영동군 계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건물터 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형태와 특징
전자의 유적에서 수습된 유물로는 청자 조각을 비롯한 자기류, 명문기와(글씨가 새겨진 기와), 연꽃무늬 수막새 등이 있다. 확인된 유구 가운데 신라 말~고려 초의 건물터 무리는 명문기와를 통해 982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어 11세기 초엽까지 존속된 것으로, 이 시기 영동 지역의 유력 세력이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건물터 아래에서 드러난 기와가마터 2기는 위의 건물터 무리의 조성과 관련된 기와를 제작한 곳으로 추정되었다. 조선시대 건물터는 신라 말~고려 초 건물터 무리와 구릉으로 연결되는 비탈면에 자리하는데, 기와가마터 등이 폐기된 이후 그곳을 정지(整地)하여 조영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같은 시대의 유구로 건물지 전면 북측의 우물 1기가 있는데, 내부에서 수습된 귀얄 기법의 분청 등 16세기 무렵의 자기들은 건물터와 우물의 사용 연대를 확인시켜 준다.
영동계산리유적은 시기적으로 신라 말에서 조선 전기에 걸치고 있으며, 다양한 기종의 토기류와 함께 해무리굽 청자완류(靑磁盌類), 철회청자(鐵繪靑磁), 기년명(紀年銘) 기와 등 중요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태평흥국 칠년(太平興國 七年)’이 각인된 기와 조각을 통하여 10세기 후반~11세기에 건물터와 시설들이 활용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이 유적은 통일신라기 도장무늬토기의 하한 문제, 한반도 청자 발생과 관련하여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인 해무리굽 자기완의 시간적 위치 및 그 하한 문제 등에 대해서도 새로운 지견을 얻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문화유적분포지도-영동군』(중원문화재연구원, 2006)
- 『영동 계산리유적』(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200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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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수키와가 쭉 이어져 형성된 기왓등의 끝에 드림새를 붙여 만든 기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떨어지는 아귀토를 보완하기 위하여 혀를 내서 만든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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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땅을 반반하고 고르게 만듦. 또는 그런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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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풀이나 옻을 칠할 때에 쓰는 솔의 하나. 주로 돼지털이나 말총을 넓적하게 묶어 만든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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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철유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 고려 시대의 청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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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비석이나 기물에 제작이나 사용 따위의 연시(年時)를 기입한 명문(銘文).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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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겉면에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눌러 찍어 무늬를 낸 토기. 통일 신라 시대의 대표적 토기 형태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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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가운데는 둥근 해를, 그 주변의 둥글고 두툼한 띠는 햇무리 형태를 하고 있는 도자기의 굽. 7세기 중국 저장성(浙江省) 월주요(越州窯)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여, 9~10세기경 우리나라 초기 청자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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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방사성 원소와 그것들의 붕괴 생성물을 양적으로 측정한 광물이나 암석 따위의 연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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