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공익사는 1905년 박승직, 니시하라 가메조의 주도로 경성에 설립된 면포 수입 회사이다. 경성의 한국인 포목상들이 일본산 기계제 면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십시일반 출자하여 설립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일본 대자본이 들어오면서 무역회사로 급성장하였다. 1914년에는 주식회사 체제로 재편하고 국내와 일본에 출장소를 증설하고 만주에도 진출하였다. 1920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불황에 대응하여 자본금을 증자하였다. 이후 무역업 외에도 운송업·수산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일제 말까지 존속하였다. 두산그룹의 모태인 박승직상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의
1905년 박승직(朴承稷), 니시하라 가메조(西原龜三)의 주도로 경성에 설립된 면포 수입회사.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공익사는 한일합방 이후 일본 대자본의 참가를 토대로 무역회사로 급성장하였다. 1910년 거래 관계에 있던 오사카(大阪) 소재 이토추(伊藤忠)합명회사의 자본 참가로 자본금을 4만 6600원으로 증자했고, 1914년에는 다시 자본금을 50만 원(12만 5000원 불입)으로 대폭 증자하는 한편 주식회사 체제로 재편하였다. 이를 통해 국내와 일본에 출장소를 증설하였고, 만주에도 진출하여 봉천(奉天)·장춘(長春)·안동(安東)·하얼빈(哈爾濱)에 지점을 설치하였다. 면사포 거래를 중심으로 조선과 일본, 만주를 아우르는 국제 무역 유통망을 구축한 것인데, 만주의 경우 1919년 주식회사 만주공익사(滿洲共益社)를 설립하여 사업을 분리하였다.
1920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불황에 대응하여 자본금을 100만 원으로 증자(25만 원 불입)하였다. 이토추합명회사가 1대 주주였으나, 박승직도 5%의 지분을 확보하여 3대 주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에는 주력 사업인 무역업 외에도 운송업·수산업·광산업·제조업, 그리고 관계된 회사의 주식 및 사채 인수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상사(商社)와 같은 형태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일제 말까지 존속하였다.
기능과 역할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박승직상점, 1882~1951년』(김동운, 혜안, 2001)
-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中村資良編, 京城: 東亞經濟時報社, 1921~1942)
- 두산그룹(www.doosan.co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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