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무산철광개발주식회사는 1939년 동양 최대 철광산으로 알려진 무산광산의 개발을 위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광업이 합작하여 설립한 회사이다. 무산광산은 동양 최대의 노천 철광산이지만 철분 함유율이 37~40%에 불과한 빈광으로 경제성이 없었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공업화’의 상징으로 건설한 청진제철소에 철광석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1942년 이후부터는 연간 100만 톤 정도의 철광석을 생산하였다. 무산철광개발주식회사는 1930년대 이후 일제의 제국 내 철강자립 정책의 추진과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공업화 정책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다.
정의
1939년 동양 최대 철광산으로 알려진 무산광산(茂山鑛山)의 개발을 위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광업이 합작하여 설립한 회사.
개설
설립목적
당시 총독이었던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는 미국과 소련에 대항하여 일본과 조선, 만주를 아우르는 ‘일본해 중심 발전론’을 주창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조선의 적극적인 산업 개발이 필요하다는 개인적인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일본 신흥재벌 닛지쓰(日窒)를 끌어들여 개발한 장진강 수력발전소 생산 전력의 소비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우가키의 구상은 무산광산 개발을 기반으로 청진에 대규모 선강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구상은 일본 내 기존 제철소와 무산광산 개발을 연결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구상과 일정한 마찰을 빚으면서 의견 조정에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무산철광개발주식회사의 설립과 청진제철소의 건설로 현실화되었다.
기능과 역할
미쓰비시와 일본제철의 합작에 의한 본격적 광산 개발을 통해 철광석 생산의 양적 확대에 주력하는 한편 빈광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선광(選鑛)시설의 대대적 확충도 이루어졌다. 계획된 시설 확충이 대체적으로 완료된 1942년 이후부터 연간 100만 톤 정도의 철광석을 생산하여 제국 내 주요 제철소에 공급하였다. 특히 1942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청진제철소는 필요한 철광석의 80%를 무산광산에서 공급받았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日本製鐵株式會社史 1934~1950』(日本製鐵株式會社史編纂委員會, 1959)
- 「조선 제철업 육성을 둘러싼 정책조율과정과 청진제철소 건설(1935~45)」(배석만, 『동방학지』 151, 연세대 국학연구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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