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는 1912년 일본군 헌병으로 한국에 들어온 인물로, 1916년 제대한 후 조선총독부의 직접적인 비호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금융 지원을 배경으로 자본가로 급성장한 일본인 기업가였다.
1920년대 중반부터 매축업을 주력 사업으로 했고, 1929년 부산 남항 매축을 계기로 최초 거점인 경북 문경에서 부산으로 사업 근거지를 이전하였다. 그는 부산항 매축과 이를 통해 생성된 부지를 판매하고 사업을 종결하는 단순한 매축업자로 만족하지 않고, 부산 남항과 북항의 매축 사업이 대체적으로 완성되는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성된 매축 부지를 이용하여 다양한 연관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의 사업은 일본 정·군·관계 거물들의 강력한 후원을 받았다. 조선총독을 역임했던 일본 정계 거물 사이토 마코토(斎藤実), 태평양전쟁을 지휘했던 군부 거물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등이 대표적이다.
이케다가 매축 부지를 토대로 벌인 사업에는 부산창고의 창고업 외에도 적기만 매축지를 이용한 대동석유주식회사의 설립(1936년), 부산진과 적기만의 매축지를 연결하는 임항철도 건설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부산임항철도주식회사의 설립(1939년) 등 다양했다. 사업에 필요한 자금과 관련해서는 정·군·관계 인맥을 바탕으로 동양척식의 자금을 마치 사금고처럼 이용하였다.
1920년대 후반부터 부산 남항과 북항 끝단인 적기만(赤崎灣) 매축이라는 거대 토목 사업을 연이어 전개한 이케다가, 매축한 부지의 활용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35년 설립 당시 자본금은 10만 원이었고, 2만 5000원을 불입하였다. 회사는 부산부 소화통 3정목(丁目) 102에 있었으며, 대표자인 이케다가 50%의 지분을 보유하여 최대 주주였다. 설립 초창기에는 주주 배당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정한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영이 안정된 이후에는 높은 영업이익을 실현했는데, 여기에 힘입어 1940년대 초에는 9%의 주주 배당이 이루어졌다. 1930년대 후반이후의 경기 호황과 군수·국책 관점의 부산항 확대에 따른 물동량 증가에 힘입은 것으로 생각된다. 경영 성적이 좋아지자, 이케다는 장남인 이케다 구니지(池田國司)를 경영진에 포진시켜 경영권을 한층 강화하였다.
부산항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화물의 보관업이 사업의 중심이었고, 부대사업으로 소 운송, 선박급수업(船舶給水業)도 병행하였다. 부산창고주식회사는 1930년대 일제의 대륙 침략과 식민지 공업화, 그리고 부산 도시개발의 영향 속에 본격적으로 확장되는 항만의 주요 시설로 기능 하였다.
일제강점기 군인 출신의 일본인 기업가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기업 중 하나이다. 한편으로는 1930년대 정치 군사적 관점에서는 물론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급격하게 개발과 확장이 진행된 부산항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