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일대의 산림자원을 이용하여 각종 펄프 및 지류의 제조, 판매를 목적으로 하였다. 특히 백두산 일대의 낙엽송(落葉松)을 이용하여 인견 펄프를 생산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북선제지화학공업주식회사는 1934년 공장 건설에 착수하여 1935년 12월 시설을 완공하고 시험 가동에 들어갔다. 자본금 2000만 원, 최초 500만 원이 불입되었다. 오지제지가 50%의 지분을 보유하였고, 식민지 국책회사들인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등이 출자하였다. 이는 북선제지가 당시 식민지 공업화를 추진하던 조선총독부의 관심 사업이었음을 보여준다. 화신백화점 박흥식도 대주주로 참여하였으며, 본사는 경성부 황금정 2정목 195에 있었다.
초창기 시설 규모는 연간 인견 펄프 2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여기에 필요한 목재는 조선총독부와 10년 계약을 통해 함경도에서 벌목하여 연간 38만 석(石)을 조달하였다. 이후 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여 1939년경에는 연간 2만 7000톤 생산이 가능해졌다. 전시체제기에 접어들어서는 주요 군수공장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였다. 일본군의 요청에 응하여 군용 목재 공급에 주력하였고, 역시 군수용인 주정(酒精), 점결제(粘結劑) 생산에도 참여하였다.
한편 1000만 원의 규모로 계획된 군산공장 건설은 1943년부터 구체화되어 이듬해 2월에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았다. 적송(赤松)을 원료로 펄프를 제조하고, 여기에 기존 함경도 길주공장 생산 펄프를 혼입하여 신문지, 교과서 등 인쇄용지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필요 설비는 모회사인 오지제지의 기존 설비를 이설하여 설치하고자 하였다. 군산공장은 1944년 10월 완공되어 가동에 들어갔다.
북선제지는 1930년대 일본 재벌기업이 진출하여 설립한 대표적 제지공장으로, 식민지 공업화의 구체적 과정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다. 군산공장은 해방 후 귀속기업체로 미군정에 접수되었고, 정부 수립 후 이관되어 민간에 불하되었는데, 초창기 국내 제지업계를 주도하였다. 북선제지 군산공장은 1954년 고려제지로 상호를 변경하였으며, 현재 페이퍼코리아라는 사명(社名)으로 존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