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무역과 매매, 위탁판매 및 관련 금융업을 목적으로 하였다.
대동무역주식회사의 설립에는 종로 상계의 중진들인 민유식(閔裕植)·박기복(朴基福)·정석구(鄭錫龜)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8월초에 회사 설립 신청서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여 9월 12일부로 허가를 받았다. 설립을 위한 준비 작업을 거쳐 11월 5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정식으로 회사가 발족하였다. 회사는 경성부 다옥정 1에 있었으며, 자본금은 50만 원(12만 5000원 불입)이었고, 11월 14일부터 영업에 들어갔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 전쟁 특수로 순조롭게 영업을 전개할 수 있었다. 여기에 힘입어 1920년 초에는 오사카(大阪)·상하이(上海)·베이징(北京) 등지에 출장소를 설치하여 수출입 물자를 직접 취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곧 직면하게 된 전후(戰後) 불황으로 영업 성적은 급격히 나빠졌고, 1921년 2월 제2기 결산에서는 6만 원이 넘는 거액의 적자를 낸 결과 영업을 일시 정지하는 상황에까지 직면하였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1921년 7월 미국인을 지배인(판매부 주임)으로 고용하여 영업을 재개했다. 미국 유수의 제조회사와 특약을 맺어 각종 직물 및 기타 중요 잡화를 직수입하여 판매하는 전략을 통해 경영난을 극복해보려고 하였던 것이다. 직수출도 전개하였는데, 독일과 미국에 연초·콩·잣 등을 수출하였다. 연초 수출의 경우를 보면 독일의 연초 부족 정보를 입수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과 특약을 체결하여 동척 소작인이 재배한 연초를 매수하여 독일에 수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영난 극복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1922년 하반기 결산에서도 영업 손실로 인해 주주 배당을 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1920년대 장기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경영난을 극복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1925년에는 창립을 주도했으며, 최대 주주이자 경영의 핵심에 있었던 김성환이 사기 혐의로 피소되는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 이후로 대동무역의 흔적이 각종 언론과 회사명부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아 정확한 연도는 불명확하지만 이 시점 전후로 해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지(朝鮮紙) 등 전통적 산물의 개량을 통해 수출을 시도했으며, 회사 조직 역시 서구 백화점을 모방하여 무역부·잡화부·직물부의 3부를 설치하였다. 또한 미국인을 고용하여 미국과 독일 등 서구와 무역 거래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종로 상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 특수를 계기로 무역업에 진출하여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 걸친 수출입 루트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대동무역은 식민지 경제 초기인 1910년대 중반 이후 활발히 설립된 한국인 경영 무역회사 중 대표적인 사례이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지물상을 중심으로 한국 전통의 종로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국제무역을 수단으로 근대 자본가로 성장하려는 노력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식민지 초기 무역업의 전개에서 한국 전통 상인이 일정한 기능과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