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연초주식회사는 1906년 스즈키상점(鈴木商店)의 가네코 나오키치(金子直吉)가 당시 전매국장 하마구치 오사치(浜口雄幸)와 상의하여 설립한 담배 회사이다. 본점은 동경시(東京市) 국정구(麴町區) 유약정(有藥町) 1정목(丁目) 1에, 지점은 경성부 명치정 2정목 69에 있었다. 연초 제조소는 조선의 경성, 평양, 전주, 대구와 중국의 만주, 천진, 상해 등에 있었다.
동아연초의 설립 목적은 첫째, 한국에 있어서 담배 시장을 독점하고, 둘째, 종국적으로 만주와 중국에서 BAT사(영미 담배 트러스트)를 구축(驅逐)하기 위함이었다.
1906년 당시 일본의 담배 산업은, 소수의 거대 제조업자와 5000개가 넘는 영세업자로 이중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일본 국내에서 전매제가 실시되고 있었고, 만주에서 중국까지 BAT사가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동아연초 설립 후 한국의 시장을 두고 BAT사와 동아연초가 상전(商戰)을 벌였으나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동아연초가 우위를 확보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BAT사는 1914년 3월에 공포되고 7월 1일부터 시행된 「연초세령(煙草稅令)」을 계기로 사업 전부를 만주 방면으로 이동시켰다. 결국 조선총독부의 지원 하에 동아연초는 당초 설립 목적이었던 영미 트러스트 회사의 구축을 실현하고, 한국에 있어서 제조 판매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였다.
1910년 1월 11일에는 조선 국내에 동아연초 공장을 완공했다. 그 동안 일본에서 담배를 수입하여 한국에 판매하던 것을 직접 제조하게 된 것이다. 1911년 당시 동아연초에서는 야마토(大和)·아사히(朝日)·가사고(笠子)[이상 구부(口付: 필터 담배)], 우에-루스·하네리-·비-와[이상 양절(兩切: 필터가 달리지 않은 궐련)], 삿기·아야메[이상 각연초(刻煙草: 살담배, 칼 따위로 썬 담배)] 등 여러 종류의 담배를 제조하였다. 원료의 대부분은 일본과 미국에서 수입했지만, 조선인이 주로 애용했던 가사고에만 소량의 조선엽(朝鮮葉)을 사용했다. 동아연초는 연초 전매제 실시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한국인 제조 판매업자의 정리에도 앞장섰다. 동아연초는 거액의 자금을 투입하여 이들을 매수(買收)하는 한 편 경성, 전주, 대구, 평양 등 각지에 공장을 설치하여 담배 생산의 일원화에 노력하였다.
1921년 4월 1일 「조선연초전매령」이 공포되고, 동년 7월 1일부터 담배의 전매가 실시되면서 동아연초는 한국에 있던 공장들을 800만원에 총독부 전매국에 매각하고 한국에서 손을 뗐다.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최대 상권을 상실하고 경영 위기에 빠진 동아연초는, 1927년 아시아연초와 합병하여 회복을 모색했다. 스즈키상점은 1930년에 가네미츠 쓰네오(金光庸夫)를 사장으로 파견하여 경영 회복을 꾀했지만, 가네미츠의 척무상(拓務相) 취임을 계기로 1939년 동아연초는 만주연초에 매각되고 만다. 이때 스즈키상점 또한 동아연초에서 철수한다.
동아연초는 한말부터 1921년 4월 1일 한국에서 「조선연초전매령」이 실시될 때까지 한국의 담배 산업을 주도했던 일본 기업이다. 설립 목적 자체가 한국 담배 시장의 독점과 외국 기업의 구축에 있었기 때문에, 한말 대한제국을 둘러싼 외국 열강의 각축전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