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소가죽 생산은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으나 회사의 형태로 등장한 것은 1908년 무렵부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6년 4월 2일자 『황성신문』에는 울란바토르에 설립되는 수피정제회사(獸皮精製會社)의 설립 청원 소식이 등장한다. 동사는 러시아와 중국[淸] 양국이 합자로 울란바토르에 설립하기로 했었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가죽 생산 회사는 자본금 10만 환[圜, 每股(주당) 50圜]의 대한수피합자회사(大韓獸皮合資會社)이다. 전 군수 정의동(鄭義東) 등이 1908년 초부터 투자자를 물색하는 등 준비를 거듭하다가 8월경에 발기했다. 농상공부의 인가를 받아 동년 11월 4일에 영업을 개시한 대한수피합자회사의 영업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공장(工匠)을 모집하여 각종 동물 가죽을 정련하여 모물(毛物)은 보다 화려하게 만들고, 피물(皮物)은 신선하고 견고하게 만든다. 둘째, 미련피(未鍊皮)를 수출할 때는 병피(病皮)를 일일이 검사하여 위생에 손해가 없도록 한다. 결국 이를 통해 국내 물산의 개량과 해외 무역의 발달을 도모함으로써 국익을 증진하는 것이 회사의 설립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수피합자회사는 일본인을 지배인으로 두고 전국 각지에 지사를 두기로 했었으나 그 구체적인 영업 실태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대한수피합자회사와 비슷한 시기에 거창군에서도 최용기(崔龍基) 등에 의한 우피회사 설립인가 청원 사례가 있었고, 1910년 4월에는 정태환(鄭泰煥)·문응삼(文應三)·조인식(趙仁植) 등에 의한 합명우피회사(合名牛皮會社)의 설립 청원이 있었다. 합명우피회사의 경우에는 자본금 모집에 문제가 발각되어 농상공부에서 청원장(請願狀)을 퇴각시키기도 했다.
이상으로 미루어 볼 때 한국의 경우 1910년까지 우피회사 설립과 관련하여 자본금 모집이 쉽지 않았다는 사실과 일본인 지배인을 두어야 했을 정도로 우피회사 경영에 미숙했다는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 있어서 일정한 규모를 가지고 본격적인 공장 형태의 시스템을 갖춘 우피회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1년 서울 영등포에 설립된 조선피혁주식회사(朝鮮皮革株式會社)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