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초주식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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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4월 부산 거주 일본인인 오구라 한사부로(小倉胖三郞)와 나카지마 고마키치(中島駒吉)가 설립한 연초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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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7년 4월 부산 거주 일본인인 오구라 한사부로(小倉胖三郞)와 나카지마 고마키치(中島駒吉)가 설립한 연초 회사.
내용

부산연초주식회사는 설립 이후 발전을 거듭했는데 주로 조선총독부의 수출 장려책과 연초 제조업의 발달에 기인하였다. 1916년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영·미 연초회사의 활동이 위축되고 중국의 연초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한 관계로, 중국으로의 제조 연초, 특히 지권연초(紙卷煙草)의 수출이 크게 늘게 되었다. 당시 그 수출을 담당했던 것은 동아연초주식회사, 조선연초주식회사, 그리고 부산연초주식회사 등 일본인 연초주식회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주요 수출 지역은 만주·대련·안동 등이었으며, 남양·러시아 및 홍콩 등으로 점차 판로를 넓혀갔다.

1921년 현재 부산연초주식회사의 취체역(取締役: 이사)은 하기노 야자에몽(萩野彌左衛門), 부산총포화약점의 나이데 오토이치(名出音一), 오구라 한사부로(小倉胖三郞), 와다 세이타로(和田淸太郞) 등이었으며, 사장은 부산상업은행의 두취(頭取: 은행장)을 지낸 하기노였다.

그러나 부산연초공장은 재정수입을 목적으로 담배 전매제를 꾀한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의해 된서리를 맞게 된다. 1921년 현재 부산에는 부산연초공장과 두세 개의 가내공업 연초 공장이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연초 전매제 실시를 앞두고 부산연초 공장의 기계만을 매수하고 나머지 소규모 공장에 대해서는 일정한 보상을 통해 연초 공장을 인수했다. 아울러 남부지방을 관할하는 전매국 지국을 대구에 두고 부산에는 대구지국의 출장소를 두어 판매만 할 방침을 세웠다. 부산에서 이 판매를 담당하는 회사로 1921년 6월에 자본금 30만원의 부산연초원매팔주식회사(釜山煙草元賣捌株式會社)를 별도로 설립하였다. 1921년 7월 연초 전매제의 실시와 함께 부산연초공장은 해산되었다.

참고문헌

「전매제 실시와 부산연초공장」(『동아일보』, 1921.2.28)
『한국 근대 연초산업 연구』(이영학, 신서원, 2013년)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中村資良 編, 東洋經濟時報社, 1921 및 1927)
釜山でお昼を(nekonote.jp/korea/old/life/tabaco/pusan.html)
집필자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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