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친일 기업가 박흥식은 1944년 2월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할 뜻을 조선 총독, 조선군 사령관, 일본 내각 총리대신에게 피력하였다. 이후 박흥식은 직접 일본에 건너가 일본 정부 당국과 절충하여 자본금 5000만원의 회사 설립에 대한 내락을 받았다.
이러한 사전 작업을 충실히 수행한 후 박흥식은 1944년 7월 설립취의서를 내걸고 주식 공모에 나섰다. 10월 4일에는 박흥식을 대표 취체역[대표이사]로 하여 설립등기를 마치고 10월 30일에는 조선 총독으로부터 항공기 제조 사업 허가를 받았다. 12월 8일에는 일본 육군대신으로부터 군수회사로 지정받고 12월 19일에 생산 책임자로 취임하였다.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의 중역으로는 박흥식이 사장, 이기연이 상무를 맡았다. 박흥식은 총 주식 100만주 중 16만주[개인 2만주, 회사 14만주]를 인수했고, 백낙승(白樂承), 박춘금(朴春琴), 김연수(金秊洙) 및 일본국제항공, 만주비행기공업, 조선식산은행 등이 주요한 주주였다.
조선비행기공업은 총독부 지정 군수 기업체로 선정되어 막대한 자금 지원과 기계, 노동력, 토지를 징발할 수 있는 특권, 그리고 경영상의 각종 편의도 제공받았다. 조선비행기공업은 만주비행기공업의 기술을 전수받고 일본 나카지마 비행기제작소의 부품을 조립하여 비행기 생산을 계획하기도 했다. 또한 1945년 4월에는 조선비행기공업에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하여 광신상업학교를 조선비행기공업학교로 개편하여 신입생을 모집하였다.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는 1945년 11월 30일 조선기계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