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1년 일본 피혁업계의 중진인 카다 긴자부로(賀田金三郞)가 영등포에 설립한 피혁회사.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1912년 11월부터는 조선피혁 내에 재화 공장을 설치하였다. 조선피혁에서 생산한 피혁을 이용하여 군수용품을 제조하기 시작한 것인데, 생산된 물량은 조선과 만주에 있는 육군과 조선총독부 등에도 공급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군화 등의 수요 증가는 조선피혁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특히 러시아로 많은 물량을 수출했다.
1917년 5월에는 긴자부로의 양자이자 나중에 일제강점기 조선 경제의 중진으로 경성상업회의소 및 조선상업회의소의 회두(會頭: 회장)를 지내게 되는 가다 나오지(賀田直治)가 사장에 취임하여 오랫동안 조선피혁을 이끌었다. 1925년 7월에 발생한 을축년 대홍수로 커다란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1928년 해군의 지정 공장이 되었고, 1931년부터는 육군 병기 본창의 지정 공장으로 지정받아 안정적인 영업 성적을 낼 수 있었다.
현황 및 의의
참고문헌
- 「한말 일제하 하전가(賀田家)의 자본축적과 기업경영」(김명수, 『지역과 역사』 제25호, 부경역사연구소, 2009)
- 「산업인맥<250> 피혁공업(1)」(『매일경제』, 1976.1.26)
- 「변모하는 재벌등기(財閥登記)(46) 조선피혁」(『매일경제』, 1969.2.18)
- 「조선피혁을 흡수」(『매일경제』, 1969.2.8)
- 「1930年代における永登浦工場地帶の形成ー大工場の進出過程を中心に─」(金明洙, 『三田學會雜誌』 101卷 1號, 東京: 理財學會, 2008年 4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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