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소년운동은 천도교청년회의 첫 부문 단체인 천도교소년회에서 전개하였지만, 그 연원은 1921년 4월 포덕부에 특설한 소년부이다. 소년부는 소년들의 지덕체의 발육 방법과 실행을 강구하였으며, 부원이 증가하자 1921년 5월 1일 어린이의 인격 옹호, 어린이의 정서 함양, 건전한 사회성 함양을 목적으로 천도교소년회(天道敎少年會)를 조직하였다.
천도교소년회는 창립 초기에는 운동회, 강연회, 탁족회, 환등회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창립 1주년을 맞는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의 날’로 정하고 어린이를 위한 행사를 개최하였다. 1923년 4월 17일 천도교소년회는 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 등 소년운동 단체와 조선소년운동협회를 결성하고 이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그리고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 잡지를 창간하여 어린이운동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하였다.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날 행사를 통한 소년운동단체의 연대를 모색하는 동시에 소년운동 지도자 간의 연대를 위해 1923년 7월 전조선소년지도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천도교소년회 주도의 소년운동 연대 활동은 1926년 어린이날 행사 개최를 둘러싸고 사회주의 계열의 소년운동 단체 오월회와 충돌하면서 위기에 봉착하기도 하였으며, 이에 따라 1927년에는 천도교소년회 주도의 조선소년운동협회는 천도교당에서 별도로 어린이날 행사를 치렀다.
천도교소년회가 중앙에서 조직되자 지방의 천도교청년회에서도 소년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8년 3월 천도교소년회는 지방 소년회 조직을 통합하여 천도교소년연합회(天道敎少年會聯合會)로 조직의 확대 개편을 단행하고 방정환(方定煥)을 대표위원으로 선정하였다. 1930년 4월 제2회 천도교소년연합회 대표대회에서 명칭을 천도교소년연합회총본부(天道敎少年會聯合會總本部)로 변경하여 활동을 확대하고자 하였으나 1931년 만주사변으로 어린이운동도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934년 천도교소년연합회총본부는 소년운동의 침체기를 극복하고 천도교청년당 지도 이념에 맞는 새 지도자상을 정립하고자 하였지만 이해 12월 천도교청년당 임시대회에서 부문운동을 지도하여왔던 부문 위원제를 폐지함에 따라 천도교소년연합회총본부도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1935년 천도교소년회는 군 단위 소년회가 100여 개, 동리 단위 소년회가 70여 개, 회원 5000여 명이었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으로 전시체제가 되면서 어린이날 행사도 불가능해지자 천도교소년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해방 이후 천도교청년회가 부활되면서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하면서 천도교소년운동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