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선업(十善業)이라고도 한다. 산스끄리뜨어로는 daśakuśala-karmāni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십선은 업이 되어 반드시 그 결과를 남기기 때문에 십선업도(十善業道)라고 불렀으며, 『반야경』 등 초기 대승경전에서는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십선계(十善戒)라고 불렀다.
십선은 그 행위가 구현되는 영역, 즉 몸〔身〕, 입〔口〕, 마음〔意〕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귀속된다. 첫째, 몸으로 짓는 선한 행위는 초기불교의 오계(五戒) 중 살생을 금하는 불살생(不殺生), 도둑질을 금하는 불투도(不偸盜), 삿된 음행을 금지하는 불사음(不邪淫)을 포함한다. 둘째, 입으로 짓는 선한 행위는 오계의 불망어(不妄語) 외에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는 불양설(不兩舌), 저주를 퍼붓지 않는 불악구(不惡口), 무의미한 잡설을 지껄이지 않는 불기어(不綺語)를 포함한다. 마음으로 짓는 선한 행위는 흔히 모든 번뇌의 근본으로 지목되는 탐욕〔貪〕 · 분노〔瞋〕 · 무지〔癡〕의 삼독(三毒)으로부터 각각 자유로운 무탐욕(無貪慾) · 무진에(無瞋恚) · 정견(正見)을 포함한다.
오계와 비교했을 때 십선의 특징은 입에 관한 계를 세분한 점과 마음을 계의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은 점을 들 수 있다. 대승 유식학파 문헌인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보살지(菩薩地)」는 삼취정계(三聚淨戒)라는 틀 속에서 계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다. 즉 섭률의계(攝律儀戒)는 붓다가 정한 계율을 지켜 악을 막는 것이며, 섭선법계(攝善法戒)는 자진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며, 섭중생계(攝衆生戒)는 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훗날 유식사상가들이 대승 보살 수행의 맥락 속에서 십선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도록 유도하였다.
신라의 승려인 둔륜(遁倫)이 쓴 『유가론기(瑜伽論記)』에서는 십선을 삼취정계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유식사상가의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경사(景師)는 십선을 율의계로 이해하는 반면 중생을 구제하는 방법인 사섭법(四攝法)을 섭중생계로 이해하고 있다. 이에 비해 원측(圓測, 613~696)은 십선과 사섭법 모두를 섭선법계로 이해하고 십선의 대부분을 그 섭선법계 중에서도 본질적으로 지켜야 할 선으로 규정된 성계(性戒)로 이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둔륜은 경사가 섭선법계를 따로 언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십선과 사섭의 선법을 실천하는 것 자체가 섭선법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있다. 요컨대 경사든 원측이든 둔륜이든 모두 중생구제의 방법인 사섭법과 연계되어 있는 섭선법계의 틀 속에서 십선을 재해석함으로써 십선의 보살 수행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