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억(康濟億)은 1888년에 태어났다.
1919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내와의 연계를 통해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내무부 산하에 비밀 연락망 조직인 연통제(聯通制) 체계를 구성하였다.
연통제는 이 해 7월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원령(國務院令) 제1호로 실시되었다. 임시정부의 지하조직망으로서 연락 기관인 동시에 재정 조달 정령(政令)의 국내 집행을 담당하는 국내 지방 행정기관이기도 하였다. 안창호의 노력으로 1919년 11월 30일 서울에 임시총판부를 설치하고, 서울에는 총판, 도에는 독판, 군(郡)과 부(府)에는 군감(郡監)과 부장(府長)을 두었다.
강제억은 임시정부의 연통제 조직에 참여하여 1920년 1월 12일 창성 군감에 취임하였다. 그는 연통제 체계 아래 창성 지역의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자금 모금과 국내외 연락을 위해 분주히 활동하였다. 밤에 경호원과 함께 창성군 각 지역에 출장하여 상하이에서 들여온 『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배포하고, 임시정부의 지시를 전달하며 애국지사들에게 성금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창성군에서의 연통제 활동은 뜻밖에 내부 조직원 이용익의 배신과 밀고로 큰 타격을 받고 말았다. 1921년경 조선총독부 경찰들의 대탄압으로 관련자들이 검거되었는데, 이때 강제박(康濟博) · 이병모(李炳模) · 전봉재(全鳳梓) 등이 체포되었다. 강제억은 검거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저항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활동해 온 평안북도 창성 지역의 연통제 조직은 무너지고 말았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