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1907년 신민회(新民會) 조직에 참여하고, 일제강점기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위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김영선(金榮璇), 김영현(金榮賢)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8년 5월 4일
사망 연도
1944년 5월 15일
출생지
경기도 장단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1992)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영선은 대한제국기 1907년 안창호·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고, 이후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 지역(만주)으로 망명하여 신흥학교를 수료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전개되자 중국 상하이에서 같은 해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군무부 위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정의
대한제국기 1907년 신민회(新民會) 조직에 참여하고, 일제강점기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위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김영선(金榮璿)은 1878년 5월 4일 경기도 장단(長湍)에서 태어나 1910년대 초 남만주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수료하였다.

주요 활동

김영선은 1907년 안창호(安昌浩) · 김구(金九) · 이동녕(李東寧) · 신채호(申采浩) · 노백린(盧伯麟) · 양기탁(梁起鐸) 등과 함께 비밀 구국운동 조직인 신민회(新民會) 조직에 참여하였다. 신민회는 국권 회복을 위한 구국운동과 정치 · 경제 · 교육 · 문화 등 각 분야의 진흥을 위해 국내외를 연계하여 폭넓게 활동하였는데, 만주, 연해주 지역에 독립군 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을 구성하였다. 이 조직과 연계하여 1910년대 초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만주) 서간도 지방으로 망명하였다.

1911년 10월 중국 남방의 우창〔武昌〕에서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나 중화민국 군정부가 세워졌다. 신해혁명은 순식간에 전국에 파급되어 한 달 안에 중국 대부분의 성(省)에서 호응하였다. 결국, 1912년 1월 쑨원〔孫文〕을 임시 대총통으로 하는 난징〔南京〕정부가 수립되어 쑨원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지도 이념으로 한 중화민국이 출범하였다.

1912년 초 중국 둥베이 지방에도 신해혁명이 파급되면서 각 지방에서도 크게 호응하였다. 이때 김영선은 남만주 독립운동 지도자 이상룡(李相龍)의 지시로 서간도 지역 한인 청년 30여 명을 규합하여 1개 소대를 편성하였다. 그 뒤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으로 나아가서 중국 둥베이 지방의 신해혁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이 일로 중국 혁명정부의 훈장을 받았는데, 이후 중국 지방 당국과 중국인들의 한인 독립운동 지원에 큰 힘이 되었다.

김영선은 신흥무관학교를 수료한 뒤 중국 옌볜〔延邊〕(북간도)과 북만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17년 북만주 하이린〔海林〕 지역에서 대종교(大倧敎) 계통의 기성(基聖)학교에서 80여 명의 대종교 신도에게 독립의식을 고취하며 대종교를 포교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3 · 1운동이 일어나자 4월에 중국 상하이로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4월 22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조성환(曺成煥) · 신철(申徹) · 박숭병(朴崇秉) · 김충일(金忠一) 등과 함께 군무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무장 독립운동 활동을 전개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희곤, 『대한민국임시정부 1 - 상해시기』(독립기념관, 2008)
안동독립운동기념관 편, 『국역 석주유고』(경인문화사, 2008)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 2(국사편찬위원회, 2005)
『독립유공자 공훈록』 10(국가보훈처, 1993)
이현희, 『대한민국임시정부사』(집문당, 1982)
국회도서관 편,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문서』(1974)
김정명 편, 『조선독립운동』 2(東京: 原書房, 1967)
집필자
장세윤(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