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업(孫基業)은 1903년 2월 25일 황해도 장연군 속달면 태탄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손사봉(孫四奉)이 있다.
1928년 베이징〔北京〕에서 이상일(李尙逸)과 함께 주구(走狗) 숙청과 일제 고관의 암살을 목적으로 조선혁명당총동맹(朝鮮革命黨總同盟)을 조직하였다. 톈진〔天津〕과 베이징을 거점으로 활동한 조선혁명당총동맹에서 톈진 지역 책임자로 역할하였다. 손기업은 동맹원들을 통해 톈진 일본 조계(租界) 내에 잠입하여 밀정 이태화(李泰華)를 총살하였다. 1930년에는 동맹원 장기준(莊麒俊) 등을 통해 톈진일본은행을 습격하여 군자금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만주전권대사(滿洲全權大使)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가 톈진에 파견되었을 때 그를 처단하기 위해 동맹원 이창용(李昌用) · 박민항(朴敏杭) · 최윤식(崔潤植) 등을 결사대로 조직하였다. 권총과 폭탄으로 무장한 결사대는 의거 직전 일본 헌병대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때 톈진에서 체포된 손기업은 창춘〔長春〕으로 압송되었다.
창춘에서 일본 헌병의 고문을 겪다가, 1933년 5월 27일 창춘 일본군법회의 임시관동군법무부(議臨時關東軍法務部)에서 재판관 단우소좌(丹羽少佐)로부터 폭발물 취체규칙위반(取締規則違反)으로 각각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뤼순〔旅順〕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박민항은 같은 해 10월에 옥사하였고, 손기업과 이창용은 만기 출옥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