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업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조선혁명당 총동맹을 조직하여 화베이 지역에서 무장투쟁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이칭
일정(一丁)
이명
손사봉(孫四奉)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3년 2월 25일
사망 연도
1985년 9월 21일
출생지
황해도 장연
대표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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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손기업은 일제강점기 1928년 베이징에서 이상일과 함께 조선혁명당총동맹을 조직하여 톈진과 베이징을 거점으로 비밀 무장투쟁을 주도하였다. 친일파와 일제 고관 처단 등을 추진하던 중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조선혁명당 총동맹을 조직하여 화베이 지역에서 무장투쟁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손기업(孫基業)은 1903년 2월 25일 황해도 장연군 속달면 태탄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손사봉(孫四奉)이 있다.

주요 활동

1928년 베이징〔北京〕에서 이상일(李尙逸)과 함께 주구(走狗) 숙청과 일제 고관의 암살을 목적으로 조선혁명당총동맹(朝鮮革命黨總同盟)을 조직하였다. 톈진〔天津〕과 베이징을 거점으로 활동한 조선혁명당총동맹에서 톈진 지역 책임자로 역할하였다. 손기업은 동맹원들을 통해 톈진 일본 조계(租界) 내에 잠입하여 밀정 이태화(李泰華)를 총살하였다. 1930년에는 동맹원 장기준(莊麒俊) 등을 통해 톈진일본은행을 습격하여 군자금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만주전권대사(滿洲全權大使)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가 톈진에 파견되었을 때 그를 처단하기 위해 동맹원 이창용(李昌用) · 박민항(朴敏杭) · 최윤식(崔潤植) 등을 결사대로 조직하였다. 권총과 폭탄으로 무장한 결사대는 의거 직전 일본 헌병대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때 톈진에서 체포된 손기업은 창춘〔長春〕으로 압송되었다.

창춘에서 일본 헌병의 고문을 겪다가, 1933년 5월 27일 창춘 일본군법회의 임시관동군법무부(議臨時關東軍法務部)에서 재판관 단우소좌(丹羽少佐)로부터 폭발물 취체규칙위반(取締規則違反)으로 각각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뤼순〔旅順〕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박민항은 같은 해 10월에 옥사하였고, 손기업과 이창용은 만기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독립유공자공훈록』 4(국가보훈처, 1987)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독립문화사, 1965)
문일민,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채근식, 『무장독립운동비사』(대한민국 공보처, 1949)
집필자
황선익(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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