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신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조선경비사관학교 5기 출신로 박정희가 주도한 5·16군사쿠데타에 가담하였다. 육군 5사단장과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초대 파월 한국군 사령관 등을 지냈다. 이후에는 박정희의 '유신개헌'에 반대하여 1972년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전역 후에는 스웨덴·그리스·브라질 등의 대사를 역임하였다. 이 밖에도 대한태권도협회 초대 회장, 대한해외참전전우회 명예회장,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회장,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명예회장 등을 지냈다.
채명신(蔡命新)은 1926년 11월 27일 황해도 곡산군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인문학원과 평양사범학교, 육군사관학교(제5기), 육군보병학교, 유군대학, 육군참모대학, 국방대학교(석사) 등을 졸업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백골병단(白骨兵團)'으로 불리우는 유격부대를 이끌고 북한 점령지를 돌며 후방 교란을 펼쳐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9사단에 복무할 당시 박정희와 매우 가깝게 지내다가 5 · 16군사쿠데타에 가담하여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국가재건최고회의 감찰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1948년부터 1972년까지 군(조선경비사관학교 입학 후 소위로 임관, 8사단 21연대 1대대장, 11연대 연대장, 제3군단 작전참모, 제1군사령부 작전참모, 제38보병사단장, 제5사단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차장, 초대 파월 한국군 사령관, 제2군사령부 사령관, 육군 중장 예편)에서 활동하였다.
1962년 김운용 등과 함께 대한태수도협회( 대한태권도협회의 전신)를 창설하여 초대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베트남전에서는 태권도 교관단에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고, 태권도를 군사전술의 일환으로 삼는 등 지략을 펼쳤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헌법 선포에 "신의가 정치인의 생명"이라며 반대하면서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1972년 주스웨덴 대사, 1973년 주그리스대사, 1977년 주브라질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에는 한국전쟁 참전 단체 활동과 강연 등을 다니며 참전용사의 복지와 보상을 위해 힘써 오다가 2013년 11월 지병인 담낭암으로 사망하였다. 채명신은 "나를 파월 장병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이 아닌 일반 병사 묘역에 안장되었는데, 국군 장성이 사병 묘역에 묻힌 것은 채명신이 처음이다. 채명신은 군복을 입은 군인으로서 명예롭게 살아가는 방법과 부하와 이웃을 사랑하고 동고동락하는 마음을 일깨워준 인물로 유명하다.
태극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3회), 을지무공훈장(2회), 보국훈장 국선장, 방위포장, 1969년 미국 공로훈장, 1969년 베트남 최고훈장, 2001년 자랑스러운 세종인상, 2005년 고려대학교 제3회 정책인대상, 2006년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