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성림사(聖林寺)는 지금 절터만 남아있다. 고려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 기록에서도 현재 부여에 속해있는 임천군(林川郡)에 성림사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17세기에 살았던 신혼(申混, 1624∽1656)의 『초암집(初菴集)』 권2에 수록된 「금수기흥(錦水紀興)」이라는 기행문에 ‘숙임천성림사(宿林川聖林寺)’라는 제명의 시가 실려 있다. 또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의 시문집 『귀록집(歸鹿集)』 권20의 「자저기년(自著紀年)」에도 임천의 선영에 성묘 갔을 때 종친 사람들이 성림사에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지은 『가람고(伽藍考)』에는 군의 서쪽 50리에 이 사찰이 있다고 하였고, 18세기 말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임천군 동쪽 15리에 성림사가 있다고 적고 있다. 위치 비정은 『범우고』 쪽이 맞으며, 18세기 말까지 성림사가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