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산 검단사

  • 종교·철학
  • 유적
  • 남북국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鰲頭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진감 혜소가 창건한 사찰.
이칭
  • 이칭두구사(豆拘寺)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6년
  • 윤기엽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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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鰲頭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진감 혜소가 창건한 사찰.

역사적 변천

검단사(黔丹寺)는 847년(신라 문성왕 9) 진감 혜소(眞鑑慧昭, 774-850)가 창건한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인조와 인열왕후(仁烈王后)의 능인 장릉(長陵)의 원찰이었다. 처음에는 파주시 문산읍 운천리에 있었지만, 영조 때인 1731년 장릉을 탄현면 갈현리로 옮길 때, 이 사찰도 현재의 탄현면 성동리 오두산으로 옮겨왔다. 검단사는 장릉에 제향을 지낼 때 절에서 두부를 만들어 한때 두구사(豆拘寺)라고도 했다. 근대에 들어와 1906년 주지인 김정호가 법당을 수선하였고, 일제강점기 때는 전등사(傳燈寺)의 말사가 되었다. 1986년 천오(天悟)가 주지로 부임하여 법화전을 중건하였고, 2005년 해송(海松)이 절을 크게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내용

검단사를 창건한 혜소는 얼굴색이 검어 '검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사찰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혹은 사찰이 소재한 오두산이 검은 편이어서 검단사라 했다고도 한다. 절의 유물로는 아미타불탱화, 신중탱화, 검단선사영정 등이 있다. 탱화는 19세기 말 작품이고, 검단선사영정은 조선 후기 때 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왕릉의 원찰로 변모했다.

참고문헌

  • - 『한국사찰전서』(권상로,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 - 『전등사본말사지』(안진호, 아세아문화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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